분리독립을 위한 찬반 주민투표를 성공리에 마친 이라크 쿠르드족이 중앙정부와 국제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경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쿠르드자치정부(KRG)가 자치권을 행사하는 에르빌과 도후크, 술라이마니야 등 3개 주(州)와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는 키르쿠크와 막무르, 신자르, 카나킨시 등은 완전한 내륙지방으로 터키, 이란과 접경해 있다. 자국 내 쿠르드족의 동요를 우려해 KRG의 주민투표 실시를 강하게 반대한 국가들이다.
터키와 이란으로부터 식량 등 주된 물품을 수입하는 KRG로서는 국경 폐쇄가 가장 큰 위협이다. 이란 남부의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에서 오는 25만달러 상당의 쌀 10트럭을 기다리고 있다는 쿠르드족 상인 슈크르 알리(56)는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은 이날 “이 지역 슈퍼마켓에 진열되는 거의 모든 제품이 터키에서 생산돼 트럭을 통해 운송된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보도했다. 터키 정부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라크는 터키의 세 번째로 큰 교역국으로 연간 교역량은 76억달러(약 8조6640억원)에 달한다.
KRG의 수도 격인 에브릴 도매시장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아메르 압둘라(40)는 “우리는 모든 것을 수입한다”며 “국경이 폐쇄된다면 한 달 안에 모든 것이 끝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경이 폐쇄될 경우를 대비해 더 많은 제품을 구비하고 있다”며 “고객들도 고립 위험에 물건을 더 많이 사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란은 지난 24일 KRG가 주민투표를 강행할 기세를 보이자 KRG 자치 지역을 다니는 항공편 운항을 중단했다. 이라크 중앙정부 역시 쿠르드족 자치구역 내 공항의 통제권을 사흘 안으로 중앙정부에 넘길 것을 요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당 지역을 거치는 모든 항공편을 중단해 고립시키겠다고 공표했다.
가장 큰 위협은 이라크 키르쿠크 유전지대와 터키 제이한 사이에 운영되고 있는 송유관 폐쇄다. KRG는 지난 2014년 이라크 중앙정부와 예산 배분에 관한 갈등이 빚어지자 독립적인 석유 수출을 위해 역내에서 생산하는 석유를 송유관을 통해 터키 제이한으로 직접 보내 수출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KRG는 지난해 하루 평균 51만5000배럴을 키르쿠크-제이한 송유관을 통해 전달했다. 현재는 하루 평균 58만3600배럴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능한 최대 송유랑은 70만배럴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주민투표는 우리 관계가 역사상 최고 수준이던 상황에 터키를 배반한 것”이라며 “송유관을 닫으면 (KRG의) 모든 수익이 사라지고 우리 트럭이 이라크 북부에 (물품을) 조달하지 않으면 쿠르드족은 식량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는 특히 KRG 자치지역에 기반한 서구의 석유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치며 지역경제에 파급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이날 “쿠르드족의 석유 수출이 조만간 일시적으로 붕괴할 위험이 증대했다”며 “분명히 지역의 석유 생산자들에게는 부정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다만 즉각적인 석유 기업의 철수 조짐은 관측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석유기업 쉐브론은 조만간 행할 시추 계획을 밝혔다. 기업 관계자는 “땅에는 변화가 없다”며 “쿠르드 당국이 이라크 중앙정부와 합의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파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앞서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은 “‘쿠르디스탄’ 국민 여러분은 승리했다”며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의 압도적인 가결을 선언했다. KRG는 25일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해 최종투표율 72.2% 중 91.8%의 찬성표를 얻었다. 결과에 구속력은 없지만 향후 이라크 중앙정부와의 협상 시 KRG의 분리독립 주장에 기반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주민투표는 위헌”이라고 주장한 중앙정부의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위헌 투표를 강행한 KRG와 협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라크의 주권을 두고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고수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