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은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항소심을 직권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김 전 실장 등의 재판은 오는 10월 17일 본격 진행된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는 26일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특검과 변호인 측 입장을 들은 뒤 "항소이유서는 기한이 지나 제출됐고 적법하지 않다"면서도 "다만 직권조사 사유 범위 내에서 본안 심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특검 측은 김 전 실장의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나 적법하지 않다며 항소 기각을 해달라고 주장했고, 김 전 실장 변호인은 법원의 직권조사로 심리할 사유가 충분히 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이 지났다는 점은 양측 의견이 같고 변호인 측은 사선 변호인 선임 후부터 새로 기간을 봐야한다는 주장도 냈지만 현재로선 인정하기 어렵다"며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이 지나 적법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직권조사로 항소심을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상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을 때 항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직권조사 사유가 있거나 항소장에 항소이유가 있을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항소이유로 본안을 심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 사건은 김 전 실장이 직권조사 사유가 있다며 자세히 의견을 내고 있다"며 "직권조사 사유는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고 그 범위 내에서 본안 심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검 측도 항소했고 그 이유와 관련해서도 변론을 열어 심리하는 게 타당하다"며 "다만 본안 심리는 특검 측은 항소 이유를 중심으로, 김 전 실장 측은 직권조사 사유를 중심으로 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원칙에 따라 향후 본안 심리를 준비해 달라"며 "직권조사사유 범위를 두고 여러 견해가 있는데 향후 재판을 진행해나가며 양측에서 주장을 하고 입증 과정을 통해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전 실장은 이날 공판준비기일임에도 법정에 출석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의 출석이 의무가 아니다.
김 전 실장은 검은 안경을 끼고 환자복을 입고 법정에 나왔고 재판 끝무렵 재판부가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향후 김 전 실장 등의 항소심과 함께 김종덕(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3명의 사건을 병합해 진행할 뜻을 밝혔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