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국정원 직원이 ‘망신주겠다’ 협박하더니 실제로…" 세가지 해명 요구

입력 2017-09-25 16:32

소설가 황석영(74)은 25일 서울 광화문 ‘KT(케이티)’ 빌딩에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에 정식으로 조사 신청을 내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사춘기 아이들도 아닌데 국가가 밀실에서 ‘누구누구를 배제시키라’고 하면서 고립을 유도하고 왕따 시켰다”며 “문화야만국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라고 일갈했다.

황 작가는 문학계 원로로 그간 정부에 꾸준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제기해왔다. 그는 앞서 ‘세월호 참사’ 문학인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후 집중적으로 감시와 배제를 받아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입은 피해에 대해 증언했다.

황석영 작가의 세 가지 해명 요구 

황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는 2008년 재야 동료들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방정책의 일환인 ‘유라시아 알타이 문화경제 연대’ 정책 건의안을 청와대에 제출하고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유라시아 순방에 동행했다. 그러나 정부는 2010년 2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되는 ‘알타이 경제문화 포럼’에서 북한을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에 “대의명분을 잃었다고 보고 알타이 연합을 준비하던 모임에서 스스로 탈퇴해 한겨레 신문에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인터뷰와 함께 기고를 했다”고 밝혔다.

황 작가는 이때부터 이명박정부의 압박이 본격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 가을 무렵에 우연히 광화문 거리에서 문화부서 출입을 하던 국정원 직원을 만났다”며 “그가 자신에게 ‘이제부터 정부 비판을 하면 개인적으로 큰 망신을 주거나 폭로하는 식으로 나게 될 테니 자중하라’고 주의를 줬다”고 밝혔다.

이어 “2012년 대선에서 재야의 야권 단일화 운동에 나서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은 뒤 온라인을 통한 공격이 더욱 집요해졌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비방 가운데는 과거 방북 직후 안기부와 공안당국이 일방적으로 주장했던 혐의 내용이 교묘히 짜깁기 된 내용도 있었다. 황 작가는 “이것은 국정원이 흘려주지 않고서는 일반인이 알 수가 없는 내용”이라며 “나에 대한 과거 안기부의 혐의 사실 발표문을 짜깁기하여 온라인상에 배포한 최초의 인물과 그 배후를 밝혀달라”고 밝혔다.

황 작가는 “박근혜정부에 들어와 문화인에 대한 적극 관리와 억압이 노골화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작가회의 성명서 발표에 대표로 나서 기자회견을 했다. 황 작가는 “이후 2014년부터 해마다 6월이면 국민은행 동대문지점에서 검찰측의 ‘수사 목적’에 의한 요청으로 금융거래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통보됐다”며 “검찰은 어떤 수사 목적으로 몇 년에 걸쳐 금융거래정보 제공을 요구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가 관여한 문예진흥위원회와 한국문학번역원의 황석영 배제과정에 대해서 진실을 밝혀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황 작가는 “자신이 프랑스인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2016년 3월 열린 파리 도서전에서 처음부터 참가가 배제되어 있었다”며 “한국문학번역원 실무자들은 내가 빠진 행사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모면하려고 도서전 조직위에 연락해 그 쪽에서 초청해 갈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했다고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나는 프랑스 조직위 측에서 보내온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가장 저렴한 에어프랑스 표값을 받기로 하고 자비를 보태어 대한항공편으로 출국했다”며 “귀국하자마자 문화부 측에서는 ‘황석영을 참가시킨 자가 누구냐’고 번역원에 추궁했고 실무직원은 시말서까지 써야 했다”고 폭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방송인 김미화(53)도 참석했다. 그는 “국정원에서 MB블랙리스트 발표가 있기 전에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밝혀진 이후부터 오늘까지 엄청나게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다”며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국정원에서 작성한 저에 관한 굉장히 많은 서류를 보면서 국가가 거대한 권력을 위해 개인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났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이날 두 사람의 증언으로 향후 문화예술인들이 적극적으로 진상조사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배우 문성근를 비롯해 권칠인, 변영주 감독 등 영화인들을 상대로 추가 조사신청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