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지인을 필리핀까지 불러들여 청부살해한 40대 남성이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4년만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살인청부업자에게 돈을 주고 한국인 허모(사망 당시 64세)씨를 살해하도록 한 혐의(살인교사)로 신모(43)씨를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신씨는 2014년 필리핀 출신의 살인청부업자 3명에게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부동산 임대·투자업자인 허씨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신씨는 2013년 지인의 소개로 처음 허씨를 만났다. 신씨는 카지노 에이전시 사업자로 필리핀 수빅에서 도박자들을 상대로 환전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아챙기는 사업을 운영했다. 신씨는 “필리핀 카지노 사업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는 말로 허씨에게 5억원을 타냈다. 그러나 신씨는 이 돈을 몽땅 도박으로 탕진했다.
빌린 돈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신씨는 허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신씨는 2014년 2월 10일 자신의 운전사였던 필리핀인 A씨에게 40대 현지인 B씨를 소개받고 그에게 살해 대가로 30만페소(약 750만원)을 줬다. “강도로 위장해 허씨를 죽여 달라”는 구체적인 지침도 함께였다. B씨는 이 돈으로 허씨를 살해할 현지인 킬러 C씨와 오토바이 운전수 D씨를 고용했다.
신씨는 이후 “필리핀 여행을 시켜주겠다”며 허씨를 꾀어 6일간의 일정으로 필리핀에 입국하도록 했다. 허씨가 2014년 2월 14일 입국하고 4일이 지난 18일에는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허씨 일행 4명을 필리핀 앙헬레스 호텔 근처 도로로 불러냈다.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하던 살인청부업자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서 일행과 함께 도로변을 걷고 있던 허씨에게 권총 6발을 쏴서 살해했다. 신씨는 그해 1월에도 허씨를 필리핀에 초청해 살해하려 했다.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4차례 현지 출장조사를 벌이는 등 지속적인 탐문을 통해 신씨의 운전기사인 필리핀인 A씨와 총기대여업자 E씨의 진술을 확보했다. 신씨 의뢰로 청부살해업자 B씨 일당이 허씨를 살해했고, 앞서 두차례에 걸쳐 살해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범행과정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청부살해업자인 B씨 일당이 ‘사건경과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살해할 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신씨가 청부살인 대가금을 전달한 시점에 원화를 페소로 환전한 내역, B씨 일당에게 보낸 허씨 사진 등 신씨를 압박할 증거를 보강했다. 9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결백을 주장하던 신씨는 A씨와 E씨의 진술서, 환전내역 등 증거를 제시하자 범행을 자백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