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은의 씨네-레마] 말할 수 있는 자유와 증거로서의 삶… 아이 캔 스피크

입력 2017-09-22 14:21
아이 캔 스피크 I Can Speak, 2017

도깨비 할매 옥분은 우리의 이웃 할머니이다. 20여년간 동네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민원을 넣어 구청 공무원을 괴롭히며 일거리를 만들어 준다. 무슨 사연인지 옥분은 영어로 말하고 싶어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를 설득해 영어를 배운다.


영화 제목 ‘아이 캔 스피크’는 말 그대로 ‘나는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언어 장애가 아니라면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말할 수 없는 이들은 누구인가. 언어를 갖지 못한 이들은 소수자, 약자, 피해자이다. 그들은 소통의 부재로 인해, 혹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고통의 막대함 때문에 언어를 갖지 못한 자이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은 웅얼거림, 단말마의 절규, 통곡, 흐느낌이라는 언어화되지 않은 소리로 표현한다. 옥분은 그런 표현 불가능한 절망을 지나 이제는 말하고 싶다. 옥분은 우리 일상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숨어 있는 역사적 사건의 증인이다.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그렇다면 왜 영어인가. 옥분은 온 세계에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고 싶다. 한때 자기 언어를 대변해줄 대리인, 통역자가 있었다. 하지만 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목소리로 직접 말하기 위해 글로벌한 언어인 영어를 배우기 위해 늦은 나이에도 고군분투한다. 9급 공무원 민재는 옥분에게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스승의 역할을 한다. 대신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자이다. 마침내 옥분은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건의 증인이 된다.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2007년 미국 하원 ‘위안부 청문회’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옥분은 미국 청문회에 증인으로 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그녀가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지 않았다며 증인 자격에 시비를 건다. 옥분은 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신의 몸을 보여 준다. 말하자면 사건의 흔적을 지닌 그녀의 몸이 증거다.

‘낮은 목소리’(1995)가 관객들에게 선을 보인 이후 최근 개봉한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까지 여러 편의 위안부 소재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기억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와 방법으로 말하기 위함이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영화는 지금껏 수없이 만들어졌고 또 만들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위안부와 같은 잊어선 안 될 역사적 사건은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하며 더 다양하게 전달돼야 한다.

임세은

예수님은 수치와 저주의 십자가를 ‘영광의 십자가’로 만드셨다. 어떤 상황이라도 믿음을 통해 영광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옥분이 치른 것은 수치와 굴욕, 절망과 고통의 사건이다. 모두가 그 수치의 기억을 숨기고 싶어 했다. 나의 망신, 집안의 망신이며, 나라의 망신이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 그렇게 대했고, 그래서 그녀도 오랜 시간 그런 줄 알고 살았다. 과거의 수치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관습적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십자가의 능력이 거기에 있다. 새로운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그녀는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피해자와 미래의 후손을 위해 역사의 증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