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프로축구 벵갈루루 FC 소속 미드필더인 호주 출신 축구선수 에릭 파탈루(31)의 ‘방북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파탈루는 지난해 국내 K리그 전북 현대 소속으로 뛴 적이 있는 지한파 선수다. 그는 북한이 북태평양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15일 북한에 체류 중이었다.
영국 BBC는 19일(현지시간) 파탈루와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벵갈루루는 13일 평양의 능라도 경기장에서 4·25 체육단과 아시아축구연명(AFC)컵 준결승 2차전을 치러야 했다. 호주 정부가 방북 금지 경고를 보냈지만 파탈루는 동료들과 함께 북한으로 원정을 떠났다. 그는 “호주 정부가 북한으로 여행을 떠나질 말라고 경고했다”며 “북한에는 호주 대사관은 물론이고 영사관도 없었고 핵전쟁 위협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파탈루는 “우리가 착륙한 순안공항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북한의 첫인상을 설명했다. 그는 “북한 입국 직후 가방와 휴대전화, 태블릿PC 등을 검사받았고 해당 기기에 저장된 모든 사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체류 중 사진을 촬영할 때는 항상 조심하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전했다.
북한이 북태평양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15일 당시 파탈루는 북한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호텔 로비에 위치한 TV로 미사일 발사 소식을 접했다. 그 때 한 남자가 다가와 그에게 “오전 6시쯤 호텔 밖에 있었다면 호텔 위로 미사일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미사일 궤적을 모두가 지켜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파탈루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동료들은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자’는 눈빛을 교환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4·25 체육단과의 AFC 2차전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파탈루는 “경기를 하는 동안 ‘우리가 이기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머리 안에서 맴돌았다”며 “다행히 경기는 0:0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이어 “팀 동료들은 우리가 점수를 내도 세레모니를 하면 안 된다며 서로 농담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파탈루는 인터뷰에서 세뇌된 듯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인상도 전했다. 그는 “선수단 안내를 맡은 북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 스스로 지켜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며 “‘위대한 수령’이 우리가 미국과 싸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찍어낸 듯 똑같이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주민들은 ‘북한은 강하고 미국은 약하다’는 구호로 세뇌당한 것 같았다”며 “정말 기괴해보였다”고 말했다.
북한 여행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파탈루는 “이번 원정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뉴스에서 들은 내용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선 안된다는 것”이라며 “미친 짓을 벌이는 자들은 극히 소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 소년들이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공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안됐다고 생각했다”며 “이런 곳이 전쟁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