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부서졌다”며 손해배상…사비 털며 진땀 빼는 소방관들

입력 2017-09-19 17:31
뉴시스

강원도 강릉 석란정에서 17일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2명이 순직했다. 이들의 영결식이 치러진 19일 고 이영욱 소방경과 팀 막내 고 이호현 소방교의 동료들은 이들을 떠나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유명을 달리한 두 명의 소방관은 현장에서 잔불을 정리하던 중 정자 지붕이 무너져 내리며 매몰됐다.

현장안전점검관이었던 이영욱 소방위는 이날 화재 진압 인력 부족으로 직접 팀 막내 소방관과 함께 불붙은 건물로 들어갔다. 이처럼 소방 인력 부족과 같은 원인으로 화재 진압을 하다 공상을 당한 소방관은 지난해에만 448명이다. 4년 전보다 57.2% 늘었다. 순직자도 10년간 41명에 이른다. 매년 5명이 인력 부족으로 목숨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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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물건을 파손했다는 이유로 배상을 요구당해 골머리를 앓는 소방관도 있다. 화재 진압 중에 문이 부서지거나 유리창이 깨지면 소방관이 사비로 보상하는 경우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화재 진압으로 발생한 기물 파손을 변상하라’는 민원이 54건 접수됐다. 부서진 문을 변상하라는 민원이 43건, 차량 3건, 에어컨 실외기 2건, 간판·차양막·모기장 각 1건씩이었다.

소방관들이 사비로 변상하는 이유는 번거로운 절차때문이다. 국가보상여부를 법정에서 가려야 하지만 소송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소송과 관련한 비용도 소방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구조 활동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은애 전북 익산소방서 팔봉 119센터장은 14일 오후 SBS 라디오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 출연해 소방관들이 겪은 손해배상 사례를 소개했다.

1. “벌집이 있어서 제거하다가 나무를 좀 태웠다. 그런데 주인이 찾아와 ‘그 나무가 몇 천만원짜리 나무인데…’라며 배상을 하라고 했다. 사정하고 부탁해서 몇 백만원 정도로 합의했다. 결국 소방관들의 돈을 걷어서 배상했다.”

2. “집 문을 부수거나, 층수가 낮으면 베란다를 통해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파손이 필연적으로 생긴다. 구조활동을 위해 베란다 문을 부수거나 유리창을 깬 소방대원들에게 변상을 요구하는 일은 종종 있다. 합의가 안되면 다시 민원이 들어오고, 민원이 들어오면 소방관들도 힘들기 때문에 개인 돈을 모아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정 센터장은 “보통은 화재를 진압하면 대개 미안해하시고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간혹가다가 이런 일(손해배상 요구)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구조 활동 위축을 걱정한 그는 “(화재 현장에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말을 안 하면 사람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문을 부수더라도) 들어가야 한다. 이런 부분이 위축되니까 긴급한 상황에서도 시민의 재산권과 구조활동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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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들은 파손 배상 외에 출동 중 교통 사고와 관련한 송사에도 휘말린다고 오 센터장은 설명했다.

3. 2014년 인천에서 만취 상태인 40대 여성을 구급차로 이송하던 중 여성이 구급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린 여성은 뒤에서 오는 차량에 치여 숨졌다. 유족은 당시 출동했던 구급대원의 부주의로 사망했다며 대원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냈다. 이 대원은 소송에서 이겼지만 소송 비용을 사비로 부담해야 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지금까지 구조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소방 활동 중 소방관이 일으킨 물적 손실은 모두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 구조·구급으로 인한 손실은 시·도가 가입한 배상책임보험으로 바로 보상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재는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국가 보상 여부부터 법정에서 가려야 한다. 그렇다보니 피해액이 적으면 소방관이 청구인을 찾아가 합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오 센터장은 덧붙였다.

청구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약식 소송에 들어가는데 판결까지 최대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소송에 휘말릴 경우 소방관들의 부담감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법률 지원을 하지만 소송 비용은 대부분 소방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