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통해 북한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문제로 논란이 일자 통일부가 17일 입장이 담긴 자료를 배포했다. 인도적 대북 지원은 "꼭 필요한 것"이며 "제재와 압박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북한 정권에 대해 '윤리적·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적 측면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인도적 대북 지원은 민생을 외면한 채 핵개발에 몰두하는 북한 정권보다 우리와 국제사회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북한 주민에 대한 지속적인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북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관측이 있으나, 이는 평양 등지의 표면적 현상”이라면서 “식량 부족, 보건의료 미비 등 북한 주민의 삶은 여전히 열악하며, 특히 영유아, 임산부 등 취약계층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부정적 입장을 밝히는 등 '지원 시기' 문제가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선 “국제기구가 자금 부족으로 대북 지원 사업을 계속 축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적 측면의 시급성을 고려했다. 시점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구분해 추진한다는 원칙 아래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엔은 지원 물품에 대해 철저한 감시 체계를 구축해놓았고, 현금이 아닌 현물 지원이며, 전용이 어려운 의약품, 아동 영양식 등이 주를 이뤄 전용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 통일부 입장 자료 주요 내용
□ 기본 입장 및 공여 계획
북한의 영유아,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이러한 원칙 아래 9월 21일(목)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WFP, UNICEF 등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른 대북지원 사업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교추협에서 지원 방침을 결정하더라도 지원 시기 등은 남북관계 상황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다.
□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
① 왜 필요한가?
북한의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관측이 있으나, 이는 평양 등의 표면적 현상이다. 식량 부족, 보건의료 미비 등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은 여전히 열악하며, 특히 영유아, 임산부 등 취약계층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유엔은 북한 주민 2500만명 중 1800만명을 식량 부족, 영양 결핍 및 필수 서비스 이용 접근 문제를 겪는 '취약인구'로 규정했다. 이 중 1300만명을 긴급 지원 대상으로 설정했다.
특히 북한 아동 및 모성 사망률이 높고, 영양 상태가 심각한 만큼, 이러한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영양지원은 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 5세미만 아동 사망률은 1천명당 25명(남한 3명), 모성 사망률 10만명당 87명(남한 11명)이다(2015년 기준). 또 5세 미만 아동 만성영양부족은 27.9%, 급성영양부족은 4%다(2012년 유니세프 조사).
② 왜 지금인가?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제기구가 공여를 요청해 왔다(WFP 5월, UNICEF 7월). 정부는 그동안 내부 검토와 관계부처 협의를 계속해 왔다. 북한 핵실험 직후이고 추가 도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시점 고민이 있었지만 인도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구분하여 추진한다는 원칙 하에 발표하게 된 것이다.
아동의 건강한 출생·성장에 직결되는 백신, 필수의약품, 영양식 지원은 시기를 놓칠 경우 회복이 불가능한 비가역성을 가지고 있어 중단 없이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기구가 자금 부족으로 대북지원 사업을 계속 축소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적 측면의 시급성을 고려했다.
* WFP : 올해 2월부터 표준치 66% 수준으로 제공량 감소. 5월부터 유치원 아동 19만명 지원 중단 등 사업 규모 축소.
* UNICEF : 지난해 하반기 백신 재고 소진으로 영양실조 치료 자금을 백신 사업으로 전용, 자금 문제 악순환
③ 북한 정권을 돕고, 제재를 훼손하는 것 아닌가?
북한의 계속되는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대북제재와 압박을 강화해 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과는 별개로,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도적 상황 개선을 위한 인도지원도 지속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상황에서 대북지원 사업을 지속해 왔다.
* 2017년 각국의 국제기구 공여 현황(9월 현재 UN 통계) : 미국(UNICEF, 100만불), 러시아(WFP, 300만불), 스위스(WFP 등 700만불), 스웨덴(UNICEF 등 150만불), 캐나다(UNICEF 등 148만불), 프랑스(WFP 등 49만불) 등
특히, 이번 안보리 결의 2375호도 임산부, 5세 미만 아동 등 북한의 취약계층이 처한 심각한 어려움에 깊은 우려를 표시하며, 북한 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도적 영향과 지원 및 구호 활동의 제약을 의도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지원 계획이 안보리 결의와 국제사회의 제재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대북지원은 민생을 외면한 채 핵개발에 몰두하는 북한 정권보다 우리와 국제사회가 도덕적․윤리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북한의 변화와 궁극적인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북한 주민에 대한 지속적인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
④ 북한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나?
국제기구는 'No Access, No Assistance'라는 엄격한 투명성 기준에 따라 철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금이 아닌 현물이 지원된다. 전용이 어려운 의약품, 아동 영양식 등의 품목이라는 점에서 전용 가능성은 없다. WFP, UNICEF는 평양 상주사무소를 운영하고, 주기적인 현장 접근(지원 시설 무작위 방문)과 함께 지원물품 재고량을 확인하고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