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천 작가 "교회가 내 작품 빼앗아 갔다… 명예에 큰 상처 남겨"

입력 2017-09-17 14:20 수정 2017-09-17 15:59
서울 보문동 한 교회에 걸려 있는 전수천 '무제'. 사진=전수천 제공

'베니스비엔날레 작가'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전수천(70)작가가 "그 교회에 있는 그림은 판매한 것이 아니라 맡겨놓았던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 작가는 "무료로 1억5000만원 상당의 성전기념비를 제작해주고 작품 '무제'를 빼앗겼다. 거기에 횡령죄에 벌금형까지 받았다"며 "작가로서 명예에 큰 상처를 입었다. 내 명예도 중요하지만 미술계를 위해서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1993년부터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한 교회에 걸려 있는 작품 '무제'때문이다. 전 작가는 "그림의 소유권은 나에게 있다"며 2014년부터 3년간 교회와 소송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작가는 "작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며 보관만 요청했다"고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올 봄에도 열린 대법원의 판단은 같았다.

전 작가는 1993년 당시 대전엑스포 전시장에 설치하게 될 상징조형물 공모에 당선돼 작품을 제작 중이었다. 재미작가로서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하던 그는 서울 휘경동에 작업실을 마련해 공모 작품 '비상의 공간' 작업 중에 당시 한국이동통신 조모 사장을 통해 보문동의 교회와 알게 됐다. 조 사장은 그 교회 장로였다.

전 작가는 "조 사장이 교회의 박모 목사를 소개하면서 교회가 돈이 없으니 교회 77주년 성전 기념비를 제작해 줄 것을 부탁받았다"며 "1억5000만원 상당의 기념비를 무료로 제작해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93년 10월경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문제가 된 작품은 십자가가 그려진 '무제'로 180호 크기의 대작으로 국내에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작가는 "작품 보관 장소를 고민하던 중에 '성전 기념비'로 알게 된 교회 목사에게 '작품을 보관 전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며 "목사가 승낙해 1993년 9월경부터 무제 작품을 교회에 보관하게 됐다"고 말했다.

설치미술가 전수천 작가. 왼쪽은 전 작가가 교회에 무료로 제작해준 성전 기념비. 사진=뉴시스

2013년 작가가 작품 보수를 이유로 무제 작품(시가 7000만원)을 가져간 뒤 교회 측에 반환요구를 거부하면서 소송이 시작됐다. 현재 '무제' 작품은 다시 교회로 돌아간 상태다.

전 작가는 "교회에서 94년 당시 목사가 500만원을 지출했다는 취지로 기재된 94년 7월 교회 회의록을 근거로 작품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작품을 판 적이 없으며 500만원을 받은 적도 없다. 또 당시 전속화랑인 가나화랑도 작품을 판매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그 목사가 나에게 현금 400만원을 줬는데, 성전기념비를 무료로 제작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항공료 등에 보태 쓰라고 준 것이었다"며 "상식적으로 교회의 성전기념비를 무료로 제작해 준 상황에서 수천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었던 작품을 500만원에 매도할 이유는 전혀 없다.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전 작가는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첫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 특별상을 수상하며 한국 설치미술가로 급부상했다. 현재 전주에서 대안예술학교를 설립, '창작예술학교 비닐하우스 AA(Art Adapter, 아트 어댑터)'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