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몰아치면 크로켓이 잘 팔린다.’ 크로켓은 일본에서 태풍을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다. 인식의 유례는커녕 태풍 속에서 크로켓 품귀현상이 실제로 나타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그저 일본에서 태풍이 상륙할 때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횡행하는 민담이다.
태풍 속 크로켓 품귀설의 유례를 놓고 추측이 난무한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발원지는 2001년 8월 일본 혼슈에 태풍이 상륙했을 때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투채널(2ch.net)에서 “재난을 대비해 크로켓을 샀다”는 게시물이다. “나도 크로켓을 먹겠다”는 식의 댓글이 이어졌고, 지금은 “태풍 속에서 크로켓이 잘 팔린다”는 인식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가설이다.
인터넷망 보급 초기였던 당시 댓글놀이에 낯설었던 인터넷 이용자들에 의해 발생한 문화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관계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지금 일본에서 크로켓이 태풍을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일본 잡지 더페이지는 16일 태풍과 크로켓의 인과관계를 추적했다. 제18호 태풍 ‘탈림’ 이 중국 동부에서 돌연 경로를 틀어 일본 쪽으로 진출하면서 현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자연스럽게 크로켓 이야기로 요동쳤다. 일본은 올해 유독 많은 태풍에 시달리고 있다.
더페이지는 이온, 로손,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등 유통기업 관계자에게 크로켓의 판매 현황을 물었고, 대답은 하나같이 “특별히 품귀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였다. 이온 리테일 홍보팀 관계자는 “태풍에 크로켓을 사겠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물량이 부족하다는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도 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인터넷 소문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크로켓은 으깬 감자와 고기, 채소를 다져 기름에 볶은 뒤 둥글게 빚은 밀가루에 빵가루를 묻혀 튀긴 음식이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선 일본식 표기인 ‘고로케’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열량이 높아 재난을 단기간 극복할 음식이 될 수 있지만, 보존기간이 짧아 적합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태풍 속에서 품귀현상이 나타난 음식은 컵라면, 빵, 음료수였다. 패밀리마트 홍보팀 관계자는 “컵라면과 같은 밀봉 식품의 판매량은 태풍 속에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 휴대용 가스렌지, 가스통, 손전등, 전지, 휴대전화 충전기 등 재난상품 등이 태풍 속 유통업체의 인기상품으로 지목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