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침을 먹을 시간도, 정시 퇴근을 위해 업무를 제때 마칠 시간도, 잠을 청할 시간도 부족하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일과 삶을 모두 움직인다. 뷰티와 패션 역시 시간의 화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레디메이드(ready-made)가 뷰티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레디메이드에서 가장 성행하는 분야는 ‘네일(손톱)’이다. 개인별 취향의 편차가 심해 표준화가 쉽지 않은 보통의 메이크업과 다르게 대부분의 손톱 모양은 비슷하다. 레디메이드에서 네일 분야가 가장 앞설 수 있었던 이유는 표준화를 통해 불편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시술 시간을 줄여 성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매니큐어는 건조에 오랜 시간을 소요한다. 또 작은 크기의 손톱에 직접 섬세한 그림을 그려 넣기란 쉽지 않다. 전문 네일숍에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네일 서비스가 회당 5만원 내외여서 자주 이용하기 어렵다. 레디메이드 네일은 이를 해소했다. 바로 ‘붙이는 네일’이다.
여러 업체가 붙이는 네일을 출시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데싱디바(Dashing Diva)는 붙이는 젤 네일 ‘매직프레스’로 잘 알려져 있는 브랜드이다. 해당 제품은 각종 드럭스토어 입점은 물론,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 등 국내 로드숍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통해 그 매출액을 점차 높이고 있다.
붙이는 네일이 인기를 끌자 데싱디바에 이어 국내 브랜드인 아리따움도 신개념 완성형 네일을 선보였다. 아리따움은 지난달 ‘모디 젤 네일 디자인 팁’을 출시했다. 완성된 네일을 ‘붙인다’는 방식 자체는 유사하다. 그러나 데싱디바는 손톱과 유사한 재질의 네일 팁을 양면테이프로 붙이는 방식인 반면 아리따움은 반만 경화된 젤 네일 팁을 붙인 뒤 젤 램프로 30초 동안 구워 경화시킨 점에서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 별도의 접착제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처럼 ‘레디메이드’ 네일 시장은 점차 더 편리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네일에 이어 눈썹 메이크업에도 레디메이드가 등장했다. 이른바 ‘눈썹 도장’이 최근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해외 브랜드 키스뉴욕의 ‘아이브로우 스탬프’는 눈썹 모양을 ‘둥근형’ ‘각진형’ 등으로 유형화하여 도장 찍듯이 눈썹을 모양 그대로 찍어 그릴 수 있게 한 신개념 제품을 내보였다.
채만식은 그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제국주의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던 시절 무기력한 ‘식민지 지식인’을 묘사하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현대 사회로 넘어온 지금 빼앗긴 것은 국권이 아닌 시간이다. 레디메이드 상품이 거부감 없이 뷰티시장의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소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