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카톡’ 김호곤 ‘깜빡’… 한국 축구에 89일간 벌어진 일

입력 2017-09-15 14:41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오른쪽)과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 뉴시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측의 협력 제안을 받지 않았다는 입장을 뒤집었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히딩크 전 감독의 사령탑 복귀설을 부정한 기존의 입장은 견지했다.

김 부회장은 14일 협회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노제호 히딩크재단 사무총장과의 메시지로 혼선을 안겨 송구스럽다”며 “당시 메시지 내용은 적절하지 않았고, 공식 제안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책을 메시지 한 통으로 제안하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술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노 총장으로부터 만나자는 메시지를 두 차례 더 받았다. 같은 이유로 만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답하지 않았다”며 “메시지를 수신만 했을 뿐 회신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이 노 총장의 메시지를 수신한 시점은 지난 6월 19일 오후 8시36분이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물러나고 나흘 지난 시점이었다. 협회는 앞서 같은 달 15일 슈틸리케 전 감독을 경질했고, 7월 4일 신태용 감독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김 부회장이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된 시기는 6월 26일이었다.

노 총장은 김 부회장에게 처음 발송한 메시지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부회장님~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 국대(국가대표팀) 감독을 히딩크 감독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이번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우선 맡아서 월드컵 본선진출 시킬 감독 선임하는게 좋을듯합니다.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후 좀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을 듯 해서요~~~ㅎ”

하지만 김 부회장은 당시 기술위원장이 아니었다. 결정권도 없었다. 그는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된 뒤에도 메시지를 통한 대표팀 감독 논의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고, 당시 촉박했던 대표팀 상황을 재정비하기 위해 내국인 감독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15일 협회를 통한 입장문에서 노제호 히딩크재단 사무총장으로부터 수신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대한축구협회

김 부회장은 “나를 비롯한 기술위원들은 월드컵 최종예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둔 촉박한 상황에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선수 파악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고려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기술위원회에서는 최종예선 2경기를 치르고 월드컵 진출을 확정하면 감독 체제를 본선까지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히딩크 전 감독의 복귀설은 한국이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지난 6일 오후 불거졌다. 신 감독이 지휘한 대표팀은 오전 1시50분(한국시간)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0차전 원정경기를 마치고 본선행을 확정했다. 이로부터 12시간쯤 지나 뉴스채널 YTN은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의 퇴임 이후 ‘한국 국민이 원하면 감독직 수용 의사가 있다’는 히딩크 전 감독 측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이 관계자가 바로 노 총장이었다.

히딩크 전 감독의 입장은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으로 풀이됐지만, 일각에서는 대륙마다 월드컵 최종예선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거취를 분명하게 할 목적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히딩크 전 감독의 입장과 무관하게 발언이 전해지는 과정과 방식에 혼선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지난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국내 언론사 특파원을 불러 가진 기자회견에서 발언의 취지, 전달 과정을 직접 설명했다. 그는 “한국 국민이 원하고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한국 축구에)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6월 대리인을 통해 대표팀 감독이나 기술고문을 맡을 의사가 있다고 협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그동안 노 총장과의 연락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지난 7일 우즈베키스탄 원정을 마치고 귀국한 인천공항에서 “전혀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히딩크 전 감독 측의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왜 그렇게 주장하는 지 잘 모르겠다”며 노 총장 메시지 수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김 부회장은 메시지를 받은 시점에서 89일 지난 이날 협회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그동안의 발언을 모두 번복했다. 다만 신 감독에 대한 신뢰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여건에서 축구인생을 걸고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신 감독에 대한 신뢰는 변하지 않았다. 러시아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있고, 히딩크 전 감독을 비롯해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은 언제든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