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식탁, 비싼 대가] '채식운동' 행사장에서 오열하는 참가자 왜

입력 2017-09-13 11:03
지난 1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주 캄푸스두조르다웅(Campos do Jordão)시에서 진행된 ‘2017 베그페스트 브라질(VegFest Brasil)'의 한 행사장. 가상현실(VR)기기를 쓴 모이제스씨는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아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가상현실 속에서 그는 피투성이 바닥 위에 떠 있었다. 그의 양옆에는 젖소가 거꾸로 매달려서 이따금 고통스럽다는 듯 몸부림쳤다. 그러다 왼쪽에서부터 한 마리씩 목에 칼이 들어갔다.

기기를 벗은 모이제스씨는 “이제까진 채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이걸 보니 참을 수 없이 끔찍하다. 오늘부터 비건(vegan․우유 계란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이 되겠다”고 말했다. 울먹이던 그는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더 이상 우유를 먹지 않겠다”는 한마디만은 계속 되뇌었다. 농장동물의 삶을 1인칭 관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이 부스에는 그새 3~4명이 더 몰려들었다.

동물학대 반대 여론 커진 브라질

지난달 31일부터 나흘간 열린 ‘베그페스트 브라질(VegFest Brasil)'에는 동물학대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부스들이 곳곳에 마련됐다. 올해 6회째인 베그페스트 브라질은 비건들이 정보를 교류하고 친목을 다지기 위해 2년마다 열리는 축제다. 채식운동단체인 SVB(Sociedade Vegetariana Brasileira)가 주관하고 동물보호단체인 HSI, PETA 등이 후원한다.
지난달 31일 오전 브라질 상파울루주 캄푸스두조르다웅시에서 열린 '베그페스트 브라질(VegFest Brasil)'에 입장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축제 첫날 아침인 지난달 31일, 브라질에선 겨울에 해당하는 시기라 최저온도는 15도까지 내려갔다. 선선한 날씨였지만 축제가 열리는 세하다이스트렐라(Serra da Estrela) 호텔 앞에 줄선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웠다.

SVB의 길예르미 카르발류 부대표는 “브라질은 세계에서 육류를 가장 많이 소비·생산하는 나라 중 하나지만 동시에 동물학대에 대한 경각심도 커지고 있다”며 “축제 열기는 매년 더 뜨거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레오폴두(São Leopoldo)시에서 왔다는 변호사 타니지 필레티(40·여)씨는 “다시 대학에 입학해 식품공학을 공부하다가 1년 전부터 동물학대 반대운동을 시작했다”면서 “오늘을 몇 개월 전부터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첫날 간단한 개회 순서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야외에 마련된 페어로 쏟아져 나왔다. 축제는 강연과 페어, 요리 쇼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페어 인기는 대단했다. 올해는 비건 제품 업체와 동물보호단체 총 43곳이 와서 부스와 푸드트럭을 설치했다. 비건 식품부터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 동물 털을 쓰지 않은 쿠션까지 한 데 모였다.
지난 1일 브라질 상파울루주 캄푸스두조르다웅시에서 열린 베그페스트 브라질(VegFest Brasil)에 설치된 야외 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비건 제품을 구경하고 있다.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마르시아 그라니투(53·여)씨는 계란을 넣지 않고 만든 브라우니를 맛봤다. 그는 “비건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실천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곳에 오니 다양한 선택지를 접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점심에는 호텔에서 비건 뷔페가 제공됐다. 고기 대신 호박과 아몬드, 시나몬, 오트가 들어간 파이가 나왔다. 아몬드유와 쌀로 만든 크림이 들어간 딸기 푸딩도 눈길을 끌었다.

비건 셰프, 비건 배구 선수

유명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17살 때부터 채식을 해왔다는 브라질의 유명 셰프 나탈리아 루글리오(19·여)씨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10만 명이 넘는다. 올해 축제에서 요리 쇼를 연 그는 “고등학교 때 관련 리포트를 쓰면서 내 방보다도 작은 케이지에 닭 50마리가 들어가 끼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걸 보고 채식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료 선수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국가대표 배구 선수 페르난다 페레이라(37·여)씨는 올해 처음으로 베그페스트 브라질에 참가했다. 브라질의 유명 TV 프로그램 ‘비건의 일기(Diário de uma Vegana)'에 출연하는 알라나 혹시(37·여)씨는 이곳에서 자신의 책 사인회를 열었다.

강연도 알찼다. 둘째 날 세계적인 동물권리보호단체 PETA의 댄 매튜스 부회장은 “동물학 대 반대운동을 할 때 분노와 슬픔 등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기 쉽다”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유머를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브라질 정부는 관리감독이 허술한데 어떻게 동물 복지를 개선해야 하느냐”는 참가자의 질문에 열띤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축제 마지막 날 참가자들은 모두 로비에 모여 대형 단체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4일간의 여정 후 절친한 사이가 돼 서로를 껴안기도 했다. 축제 기간 내내 쉴 새 없이 뛰어다녔던 SVB 직원 빅토르 산체스(29)씨는 “이곳에서 희망을 봤다”며 “다음 축제가 기대된다”고 벅찬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 3일 브라질 상파울루주 캄푸스두조르다웅시에서 열린 비건 축제 '베그페스트 브라질(VegFest Brasil)'에서 참가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상파울루(브라질)=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