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원유차단, 중·러 외에 영국도 부정적… 수위 낮춘 배경

입력 2017-09-12 14:43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2일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미국이 작성한 초안보다 후퇴했다. 특히 대북 원유 공급을 전면 차단하려던 방안이 정유제품만 55% 줄이는 것으로 완화됐다.

원유 차단은 중국과 러시아가 가장 반대한 대목이었다. 미국은 거부권을 가진 두 나라를 결의에 끌어들이려 타협을 택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외에도 원유 차단에 부정적 입장을 가진 상임이사국이 더 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영국도 대북 원유 공급 중단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영국 관료들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미국의 초안대로 원유 공급이 완전히 차단될 경우 북한은 올 겨울 얼어 죽은 아이들의 사진을 국제사회에 공개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북한이 원유 차단을 주도한 서방 세계를 ‘집단학살의 설계자’로 부각시켜 비난하고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원유 차단에 부정적인 영국 측 시각에는 런던의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최근 내놓은 분석 결과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IISS는 대북 원유 차단이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봤다. 북한 경제는 에너지원을 유류에서 석탄액화연료(CTL)로 바꿔 버틸 수 있는 구조여서 그렇다고 했다.

이번 결의는 대북 원유 수출 물량을 현 상태로 동결하고, 정제유 수출량을 연 200만 배럴로 제한했다. 액화천연가스(LNG)와 콘덴세이트(천연가스에 섞여 나오는 경질 휘발성 액체 탄화수소)의 수출은 전면 금지했다. 초안보다는 크게 완화됐지만, 처음으로 원유와 정제유 수출을 제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당장 ‘생명줄’을 끊는 대시 ‘경고’를 보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조치로 북한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특히 북한은 최근의 핵과 미사일 도발 전부터 유엔 제재에 대비해 원유 비축량을 늘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도 “이미 북한에 들어가 있는 원유에 대해선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향후 추가 도발을 할 경우 유류 공급과 관련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번 결의안의 행간에 담겨 있다. 그동안 동원하지 않았던 ‘유류 제재’가 마침내 안보리 테이블에 올라왔다.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설 경우 정유제품 공급 상한선을 더 낮추거나 아예 금지하는 방안, 원유 수출을 감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조치가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표결에 앞서 “제재를 강행할 경우 최후 수단을 사용하겠다”는 협박 성명을 발표하며 도발을 예고해놓은 상태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결의안 채택 이후 나란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북한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가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엄중히 위반한 것"이라며 "중국은 안보리가 북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 것을 찬성한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 통과된) 2375호 결의가 전면적이고 철저하게 실행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국들은 모두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고 상응한 역할을 발휘해야 하며 한반도 긴장 정세 완화 및 대화 재개를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 반드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하고 국제사회 보편적인 목소리에 따라 핵 미사일 개발을 더는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미국과 한국 역시 정세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행보를 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실리 네반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추가 제재가 북한 경제를 질식시켜 인도적 위기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면서도 "엄격한 대응 없이 북한의 핵실험을 놔두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중국과 더불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 재개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며 "이 같은 계획을 저평가한다면 엄청난 실수"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