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리포터 빌 웨어는 10일(현지시간) 허리케인 '어마' 보도를 위해 플로리다주의 키라고섬으로 향했다. 어마의 상황을 알리는 현장 생중계를 진행하느라 허리케인이 상륙한 플로리다 한복판에 섰다. 거센 바람에 나무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한 손으로 모자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바람이 강해지면서 웨어가 돌풍에 휩쓸려 날아갈 듯 아찔한 장면이 여러 차례를 전파를 탔다.
이 뉴스 화면이 SNS에서 확산되며 “왜 방송은 리포터들을 위험한 상황에 내모는가”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주민들에게 위험하니 대피하라고 방송하는 리포터들에게 왜 허리케인 한 복판에서 야외 생중계를 진행하게 하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CNN 리포터만이 아니었다. MSNBC 방송은 10일(현지시간) 리포터가 마이애미주의 거리에 서서 길가에 쓰러진 거대한 나무를 가리키며 생중계를 했다. 방송 도중 그의 주변에서 다른 나무들이 잇따라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스태프와 리포터의 안전을 걱정해야 했다.
Still not reassuring, - stay in safe area!!
— Yom (@moymoy)
날씨를 전문적으로 보도하는 ‘날씨 채널’의 리포터 마이크 세이델을 걱정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10일(현지시간) 기상학자 세이델은 허리케인 어마를 생중계하기 위해 마이애미 한복판에 섰다. 우비를 입고 간신히 마이크를 든 그는 바람에 몸을 주체하지 못하며 휘청거렸다. 위험한 상황에 생방송 도중 급히 주차장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이런 광경은 쉽게 목격된다. 지난 7월 31일 SBS는 홍수로 주민들이 고립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제주 지역 방송인 JIBS의 도움을 받았다. 제주도는 이날 갑자기 국지성 폭우가 내려 낮은 지대에 있는 집들이 물에 잠겼다. 이 상황을 취재해 생중계를 진행한 JIBS 기자는 홍수로 잠긴 집을 방문해 허리춤까지 차오른 침수 현장에 직접 들어가 상황을 전달했다.
빗물이 허리까지 들어찬 거리를 직접 걷던 기자는 홍수에 잠긴 집을 방문해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마을 골목이 물에 잠겼다. 어디가 길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지대가 낮은 지역은 성인 허리까지 빗물이 들어차 마을 전체가 고립돼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기자 정신이 투철하다’며 기자를 향한 칭찬이 이어졌다. 2010년 생중계 시작 전부터 눈을 맞은 듯한 모습으로 폭설 소식을 전했던 KBS 기자를 떠올리는 네티즌도 있었다. 당시 오전 6시, 7시, 8시에 스튜디오와 연결해 기상 특보를 전한 기자는 점차 옷에 쌓여 가는 눈으로 대설 상황을 실감 나게 전달했다는 평을 받았다.
기상 특보를 전하며 위험한 상황을 생중계하는 방송 전통은 지난 몇 십 년간 계속돼 왔다. 자연재해나 기상특보가 있을 때마다 리포터들은 어김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SNS의 발달로 지역 상황을 사진과 영상으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만큼 ‘위험한 생중계’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어났다. 방송에서 위험하다며 대피를 요구하는 지역에 리포터들을 보내는 것이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리포터들이 정보를 전달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경우 기상특보 생중계의 필요성과 가치에 의문을 갖게 된다.
한편 생생한 보도를 본 시청자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지역 주민들은 대피를 서두르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리포터들 역시 생명이 위험한 상황은 최대한 피한다고 말한다. CNN의 존 버먼 리포터는 10일(현지시간) 잔해가 날아다니는 마이애미에서 생중계를 했지만 “심각한 위험에는 놓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히 말하자면, 잔해들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고 했다. 방송국 역시 리포터들의 안전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MSNBC의 앵커는 10일(현지시간)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저희 리포터들이 지금 안전한지 알아봐야겠습니다”라며 보도를 멈추기도 했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자 리포터들이 직접 허리케인 생방송을 정당화하려 나서기도 했다. MSNBC의 기상 리포터 샘 챔피언은 10일(현지시간) 방송에서 “우리는 시민들이 바깥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이런 생중계를 진행한다”며 목적을 밝혔다. CBS 리포터 마크 스트라스맨 역시 ‘위험하다며 주민들의 대피를 요구하는 지역에 왜 리포터들이 서서 생중계를 진행하는가?’라는 질문에 “TV 방송은 시각적 증명을 요구한다”며 “시청자들에게 현재 일어나는 상황은 사실이며 주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청자들에게 같은 상황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