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섰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거론한 사실을 언급하며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케인 위원장은 대선 후보 출신의 공화당 중진의원이면서 미국 안보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전술핵 문제를 거론했다는 사실은 미국 정가에서 오랫동안 ‘불가능한 이야기’로 여겨졌던 이 사안의 ‘봉인’이 풀려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매케인 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CNN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술핵 문제를 꺼냈다. 그는 “한국 국방장관이 불과 며칠 전에 핵무기 재배치를 요구했다”며 “그것은 심각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송 장관이 지난 4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해 “정부 정책과 다르지만, 북핵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을 언급한 것이다.
매케인 위원장은 또 “김정은이 공격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그 대가는 절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야 한다”며 트럼프 정부에 대북 초강경 대응을 요구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가 중국과 다소간 무역을 끊는다면 미국에 해가 되겠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언가 변해야만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미 양국에서 일제히 분출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전술핵 재배치로 바로잡아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 NBC 방송은 지난 8일(현지시간) 백악관과 국방부 고위관리를 인용해 한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의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여러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핵심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서 전술핵 재배치 문제가 논의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었다.
핵 전문가인 김태우 건양대 석좌교수는 10일 “현재 핵불균형 상태에서는 북한의 상시적인 겁주기, 도발 위협 등에 시달려야 한다”며 “전술핵 재배치는 남한의 일방적인 취약성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전력에 대응해 우리 군이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체계가 없다는 것도 전술핵 재배치의 근거다. 그만큼 전술핵의 존재가 절대적인 억제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술핵 재배치가 실제 이뤄지지 않더라도 이런 논의가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에 이어 한국, 일본, 대만까지 핵무장에 나서면 동북아시아엔 필연적으로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동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중국으로선 원치 않는 그림이다. 전술핵 재반입 논의를 통해 ‘핵 도미노’ 현상을 우려한 중국을 압박할 수 있고, 북한에 대한 압박도 강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전술핵이 실제로 한반도에 재배치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전술핵의 주인인 미국 정부 입장이 아직은 분명치 않다. 한반도 재반입 반대 기류가 약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전술핵 효용성에 의구심을 보이는 시각은 여전하다. 다만 북한이 수소폭탄 성공을 과시하는 만큼, 미국 정부내에서도 이전과 차원이 다른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술핵 재배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전술핵이 재배치될 경우 유력한 후보인 전술핵폭탄 ‘B61-12’는 전투기에서 투하하는 형식이다. 괌 또는 주일미군기지에 배치된 전투기·잠수함의 공격 시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때문에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미 군사전문가들 얘기다.
한반도에 전술핵이 반입되더라도 통제권이 미국에게 있다면 효용성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한 국책연구소 전문위원은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에 배치한 전술핵 200여기의 정보를 동맹국과 공유하지만, 통제권은 미국만 갖고 있다”며 “핵무기 통제권을 우리 정부가 가지지 않는 이상 재배치는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 역시 기존 입장과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본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전술핵 반입을 검토한 없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