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로 예정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미국이 제시한 초안과 중국·러시아의 입장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이번 결의에 ‘대북 원유 공급 차단’을 관철시키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초안의 제재 방안 중 수용 의사를 보인 것은 ‘북한 섬유 수출 금지’뿐이라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11일 표결’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48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치열한 막판 협상이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백악관 인사들이 ‘전술핵’ 등을 언급하며 군사옵션 발언수위를 높이는 것도 이 협상과 무관치 않다.
미국이 ‘원유 차단’ 내용이 담긴 결의안 표결을 강행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결국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을 놓고 분열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 “중·러는 ‘섬유’ 이상의 제재를 원치 않는다”
로이터 통신은 9일(현지시간) 미국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결의안 초안에 제시된 제재 방안을 ‘전반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며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섬유 수출 금지뿐”이라고 보도했다.
또 중국 관료가 사견을 전제로 “대북 원유 공급을 차단할 경우 동북아 정세가 엄청난 불안정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 발언을 전했다. 중국이 원유 차단을 그토록 꺼려온 가장 큰 이유가 동북아 정세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유엔 안보리는 15개 이사국이 있다.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9표 이상을 얻고,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5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거부권 행사는 안보리의 ‘분열’을 뜻한다. 지난번 대북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를 얻어 통과됐을 때 각국은 하나같이 ‘합의’에 성공한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결의안은 당시처럼 한목소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 6차 핵실험에 대응하는 것이어서 미국의 요구는 어느 때보다 수위가 높아졌고, 중국과 러시아가 양보할 여지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4일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김정은이 전쟁을 구걸하고 있다”며 외교관으로서 이례적인 강경 발언을 내놨다.
이후 이사국 설득과 협상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는 대신 곧바로 ‘11일 표결’ 방침을 발표했고 안보리에 11일 회의 소집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며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런 일정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도 불사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두 나라를 압박하는 고도의 외교 전략이면서 동시에 결의안이 무산된다면 미국은 ‘독자적 행동’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그 독자행동이 군사적 조치일 것임을 연일 내비치고 있다.
◇ 中 “미국이 북한을 먼저 공격하면 우린 북한 지지할 수밖에…”
미국 NBC방송은 미국과 중국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최근 오간 이야기를 8일 보도하며 중국 관리의 발언을 전했다. “미국이 북한을 먼저 공격하면 우리는(중국) 북한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을 선제 타격한다면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
이 발언은 미국 당국자들이 중국 측에 ‘전술핵’ 등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미국의 한 당국자는 “중국이 원유 공급을 차단하는 등 대북 압박을 강화하지 않으면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인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할 수 있으며, 미국은 이를 막지 않겠다는 뜻을 중국 측에 전했다”고 NBC에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미국의 선제타격 시 북한 지지’ 발언은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결코 원치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동북아 정세는 ‘시끄럽지 않은 한반도’로 요약된다. 중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이 미국을 견제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안정’과 ‘힘의 균형’이 동시에 이뤄지려면 중국의 영향을 받는 북한 정권이 존재해야 하고, 남북한 분단 상태가 시끄럽지 않게 유지돼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거나 원유 공급을 차단해 북한 내부 정세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와 거리가 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북 원유 차단과 관련해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고 발언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인도적 차원의 발언처럼 포장했지만, 속내는 원유 공급이 끊겨 북한 주민의 삶이 더욱 피폐해질 경우 그 불만이 터져 나와 북한 정권의 위기로 이어지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러시아 역시 북한 정권의 존립을 원하는 입장은 중국과 같고, 그런 차원에서 원유 차단과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반대하며 계속 ‘대화’를 말하고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