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9일 장외집회에서 ‘핵무장’을 공식적으로 주장했다. 직접 미국에 가서 전술핵 재배치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전술핵을 가져올 수 없을 경우 ‘파키스탄식 핵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논리를 폈다.
앞서 미국 NBC방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안 등 공격적인 대북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이 요청하면 전술핵 재배치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백악관 관료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의 보수야당과 미국 정부에서 나란히 ‘전술핵 재배치’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 야당은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며 ‘핵무장만이 살 길’이란 주장을 폈고, 미국 정부에서는 고강도 북핵 대응책의 하나로 전술핵이 거론됐다.
하지만 NBC방송은 이런 주장에 대해 “30여년간 유지해온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파기하는 셈이어서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될(전술핵이 다시 배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홍준표 “이게 나라냐… 핵무장만이 살 길”
홍준표 대표는 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광장에서 ‘5천만 핵인질·공영방송장악'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해 연설하며 “내일부터 핵 인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온오프라인 1000만 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대선 당시 전술핵 배치를 공약했다”며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한테 가장 불리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서도 전술핵 찬성이 60%가 나왔다. 여론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 주에 우리 의원 외교관이 워싱턴으로 간다. 우리 국민의 정서를 워싱턴 조야에 전달한다. (미국이) 전술핵을 재배치해주지 않으면 핵우산으로 한반도를 보호하겠다는 것은 공허한 공약에 불과하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살길을 찾아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는 원자력을 한 지 30년이 됐기 때문에 북한과 비교가 안 되는 플루토늄이 있다. 그것을 재처리만 하면 된다. 정 안 된다면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파키스탄식의 핵개발 정책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부연했다.
홍 대표는 “우리가 살기 위해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해 달라는 것이다. 1991년까지 있었는데 노태우 대통령 때 미국이 도로 갖고 갔다. 이 정부가 못하는 일을 우리가 하겠다. 의원 외교관을 보내고 그 다음에 제가 직접 가겠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직접 가서 미국 정부를 설득하고, 또 사드 문제로 중국에도 가겠다. 중국 공산당이 대회만 끝나면 대통령보다 나를 먼저 초청하기로 했다. 우리가 중국으로 가는 것은 확정됐다. 미국은 협의 중이다“라고 했다.
◇ NBC “백악관, 전술핵 배치도 배제 안 해”
NBC방송은 익명을 요청한 백악관 및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트럼프 정부가 사이버 공격 및 감시활동 강화 등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외교적·군사적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들이 북한의 6차 핵실험 당일에 선제공격을 포함한 다양한 옵션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중국 등 동맹국과의 관계 유지가 옵션의 핵심으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좌관들은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이 심각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위 군 관계자는 중국 정부 관리들이 “만약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한다면 중국은 북한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NBC는 “그럼에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공격적인 일이고 국내외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요원하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7일 쿠웨이트 국왕과의 정상회담 후 백악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선호하는 수단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 전술핵 재배치, 과연 가능할까… 효과는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한마디로 가능성도 낮고, 설사 된다 한들 큰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는 거였다.
문 특보는 “군사와 민간 부문을 동시에 타격하는 것이 전략핵이라면 군사적 목표물만 타격하는 것이 전술핵”이라며 “한반도처럼 군사 지역과 민간 지역이 혼재돼 있는 곳에서는 그 구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때 900개가 넘었던 전술핵을 1991년 주한미군이 철수시킨 데는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배치된 전술핵을 관리하는 데만 4000~5000명의 병력과 막대한 예산이 들었다는 것이다. 재래식 전력으로 전술핵을 보호해야 하는 딜레마 때문에 한국에서 전술핵을 철수시킨 측면도 있다는 얘기였다.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설득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전술핵의 대북 억지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문 특보는 “핵 억지력의 세 요소 중 제일 중요한 게 인식인데, 전술핵을 다시 가져다 놓는다 해도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는 북한의 인식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따라서 북한의 행동에는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