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남편 폭행 피하다 추락사 한 아내, 남편 책임 물을 수 없어”

입력 2017-09-09 18:30 수정 2017-09-09 18:31
아내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치다 건물 아래로 떨어져 사망해도 인과관계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으면 남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안성준)는 자신의 폭행을 피해 도망치는 아내를 쫓다가 건물에서 추락케 해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재판에 넘겨진 오모(4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다만 검찰이 예비적으로 공소 제기한 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오씨는 지난해 9월 30일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아내 이모(42)씨가 내연남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내연남의 번호를 알려달라”며 포크와 주먹으로 이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이씨는 화장실로 도망쳤다. 오씨가 화장실 문을 부수고 화장실로 들어서자 이씨는 화장실 창문을 통해 몸을 피했고, 10m 높이의 건물에서 추락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재판부는 “이씨가 폭행을 피하기 위해 화장실로 대피한 사실과 오씨가 화장실 문을 부숴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자 창문 밖으로 이씨가 뛰어내린 사실 사이에 인과관계를 설명할 직·간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씨가 자녀들 앞에서 내연관계 사실을 추궁당했고, 그 과정에서 수치감과 자괴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투신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