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 포르노'는 헤어진 연인에게 협박 또는 복수를 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말한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명칭은 영상 자체만큼이나 피해자에게 큰 상처로 다가온다.
'리벤지(복수)'라는 말은 피해자가 복수당할 ‘짓’을 했다는 어감을, '포르노'는 피해자가 음란물에 '출연'했다는 인상을 준다. 과거 사랑하는 사람과 나눴던 행위가 문제의 소지를 가진 '짓'으로, ‘야동(야한 동영상)’ 촬영 행위로 전락하게 만들며, 피해자를 그 야동의 '주인공'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런 영상의 유포는 피해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녀' 등의 끔찍한 별명으로 불려지게 만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영상을 봤을지 가늠하지도 못한 채 수치심과 공포로 일상을 잃어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집계한 ‘개인 성행위 영상 삭제 요구’ 건수는 2012년 958건, 2013년 1166건, 2014년 1404건, 2015년 3636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2016년에는 7325건으로 2012년의 7배가 됐다. 스마트폰의 보편화와 몰카제품의 다양화가 이런 폭발적 증가를 이끌었다. 대검찰청의 ‘2016 범죄 분석’에 따르면 몰래카메라 범죄 피해자는 여성이 98%를 차지했다.
더욱이 피해자 상당수는 피해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인이 영상의 존재를 알려주거나, 영상을 직접 검색해보지 않는 이상 피해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특성을 이 범죄행위는 갖고 있다. 실제 피해자 수는 7000여명보다 훨씬 많을 것이고,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의미한다.
피해를 인지한 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심각해진다. 적지 않은 피해 여성이 경찰서에 갔다가 더 큰 수치심과 상처만 얻고 돌아오기 일쑤다.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선 영상에 등장한 자신의 몸을 직접 캡처해 제출해야 한다.
만약 촬영을 동의했다면 가해자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줄어든다. 촬영에 동의한 것이지 유포에 동의한 것이 아닌 데도 그렇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나체 사진을 유포했는데, 그 사진이 여성 스스로 촬영한 것이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사례도 있었다. 법조계에선 “영상이 유출돼 피해자가 큰 상처를 받게 됐는데, 누가 찍었느냐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문제가 크다”는 지적을 했다. 노영희 한국여성변호사회 상임이사는 “입법 취지가 무엇인지 명확히 판단해 법 규정을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통위를 통해 ‘대리삭제’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수십개 유포사이트를 피해 당사자가 직접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시정 의결까지 평균 10.9일이 소요돼 피해자들은 열흘간 애를 태우게 된다.
그래서 결국 찾게 되는 것이 ‘디지털 장의사’ 업체다. 월 200~300만원 비용이 들고 영상을 완전히 삭제하는 데 몇 달이 걸린다. 하지만 한 번 유포된 영상은 내려받기를 한 이용자가 언제든지 재유포할 가능성이 있어 완전한 삭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자들은 언제든지 영상이 다시 떠돌아다닐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혹시 내 앞에 있는 이사람도 내 몸을 봤을까’ 하는 수치심에 외출을 꺼리게 되고, 경력단절로까지 이어진다.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수백 혹은 수천만원을 지출한 뒤 재유포된 사실을 알게 되자 삶의 끈을 놓아버린 여성도 적지 않다.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 김호진씨는 “사람이 진짜 죽어요, 이것 때문에. 지워 달라고 요청이 와서 작업을 마치고 다시 의뢰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면 다른 가족이 받아요. ‘자살했다’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 날로 커짐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29일 “몰래 카메라 범죄에 대한 강력한 법적 대응과 피해 구제를 위해 고강도 대책을 마련해 여성이 가지는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2018 여성가족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에 ‘몰래 카메라와 리벤지 포르노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상담과 촬영물 삭제 지원 비용’으로 7억원이 처음 편성됐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리벤지 포르노, 몰카 등이 단순한 ‘야동’이 아니라 ‘범죄영상’이며, 시청하는 것만으로 '2차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영상은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했거나 그로 인해 취득한 물건’이므로 영상을 내려받는 것 자체를 규제하는 ‘단순소지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동·청소년음란물’의 경우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5항에 따라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임을 알면서 소지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민다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