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 보니 방 가운데서 십자가가 조용히 빛을 뿜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쉴 틈 없이 떠들고 있었다. 담임선생님한테 칭찬 받은 이야기, 신나게 놀았던 친구 이야기, 특별활동 시간에 있었던 에피소드, 엄마에게 혼난 사연….
시끄럽던 아이들이 입을 닿고 조용해졌다. 초롱초롱 눈들이 빛났다. “헬로 에브리원(Hello, evreyone)!” “하이, 미스터 김(Hi, mister Kim).”
영어가 오고갔다. 미군 군복을 입은 정장 한 사람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영어를 시작했다. 원어민 영어학원 같은 분위기였다. 가운데 교탁에 선 군복의 장정은 김진우(22) 상병.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수학과 1학년 재학 중 카투사로 자원입대했다. 그는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수학을 가르친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차상위’계층 자녀들. 한 부모 가정 출신이나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길 위의 사람들’은 김 상병 같은 카투사 10여명이 매주 2회 영어와 수학 강의를 하고 양궁 등 체육활동, 색소폰 등 악기교육을 하는 ‘공부방’이다. 물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에 의해 설립된 ‘교회 공부방’이다. 정용준(42) 목사와 서효경(31) 사모가 100일 전 이곳 아이들을 위해 열었다.
정 목사는 방과 후 부모의 보살핌도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동네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데 주목했다. 그리곤 인근 미군기지에서 열린 기도회에 참석해 설교한 뒤 결심했다. 카투사 출신인 정 목사는 자신과 같은 카투사 장병들 가운데 아이들을 위해 재능 기부할 사람을 찾았다. 10여명의 크리스천 카투사들이 자원했다. 그러자 미군 장교들도 힘을 보탰다. 함께 공부방을 위해 기도했고, 카투사 장병들을 보내줄 뿐 아니라, 직접 특강에도 나섰다.
정 목사가 공부방을 만든 건 남다른 사연 때문이다.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기독교윤리학 전공)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그는 80대인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했다. 아버지는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며칠 뒤 함께 귀국한 서 사모와 두 아들이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차에 치인 아이는 병원으로 호송됐고, 부모를 찾았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결손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를 보살피며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위해 사역하기로 결심했다.
“주위에 이런 아이들이 꽤 많았습니다. 한두 명씩 붙잡고 영어를 가르쳤죠. 원래는 노숙인 사역을 하려 했지만, 도움은커녕 사회를 향해 분노만 키우며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당장 치유의 사역을 시작해야 했지요.”
살던 집 반지하를 개조해 132㎡ 남짓 공부방을 만들었다. 1년 가까이 낡은 벽지를 긁어내고 페인트를 칠하고 습한 곳은 방수공사를 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후원이 잇따랐다. 한 사업가는 목재를 제공했고, 전기공사도 무료로 가능했다. 평택 시내에서 태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40대 여성 말리카씨는 자신이 만든 쌀국수를 매끼 제공했다. 탤런트 주원씨는 20㎏짜리 50포대의 쌀을 보내왔다.
공부방은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특정한 교회선교를 위한 프로그램도 아니다. 다만 기독교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한다는 게 설립 이유일 뿐이다.
3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가장 눈에 띄게 바뀐 것이 있다. 바로 공부방 아이들의 삶의 태도다. 비뚤어지고 부정적이던 세상을 보는 시선이 긍정적인 눈으로 변화했다. 마음이 안정되니 자연스레 공부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작은 가슴마다 꿈과 희망이 생겼고, 마음을 의지할 울타리가 생겼다.
“아이들한테 공부 욕심내지 않아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자’가 목표입니다. 근데 공부도 잘하게 되니 우리 공부방이 ‘명문’이 됐죠.” 정 목사가 활짝 웃었다. 한참 아이들과 카투사 교사들을 위해 식사준비를 하던 서 사모도 화사한 얼굴이었다.
사회문제 관심이 많은 민재(12‧이하 가명)는 난생처음 학교 자신의 반에서 반장으로 뽑혔다. 유치원 교사가 꿈인 혜지(11)는 한글을 잘 이해하지 못해 놀림을 받았지만 이젠 국어 우등생이다. 공부방 벽엔 그림엽서로 예쁜 꿈들이 걸려 있었다. 장애인 엄마와 함께 사는 길우(13)는 ‘쌀 보리를 재배하는 농부’라는 엽서를 붙였다. 승철이(10)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가르치는 피아노 원장”, 길원이(7)는 “위대한 정치인” 그림을 걸었다.
재능 기부에 나선 카투사 장병들은 “내가 더 힘을 얻는다”고 이구동성이다. 김 상병은 “굉장히 큰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곳에서 교사를 일하다 전역한 반가운(25‧뉴욕주립대 회계학과 졸업)씨는 지난 주 미국으로 가는 길에 다시 이곳을 들렀다. 그는 “카투사 생활 중 아이들을 가르친 일은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정 목사는 다음 달 공부방 옆에 ‘길위의교회’를 설립한다. 그는 “공부방 사역을 통해 주한미군과 카투사 장병들과 함께 결손가정 자녀들을 돌보며 사회적 책임을 끝까지 다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은 우리 아이들에게 공정한 방법으로 100m 시합을 하라고만 합니다. 그러나 출발선을 모두 다르게 세워 놓은 사실에는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가난하고 마음이 아픈 아이들에게 그런 시합은 결코 공정하지 않습니다. 출발선을 조금 바꿔서 다들 1등이 아닌 완주하는 아름다움을 갖게 해보고자 합니다.”
평택=글·사진 유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