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미FTA 폐기 논의’ 중단한 까닭… 소기 목적 달성?

입력 2017-09-07 12:07


미국 백악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논의를 당분간 중단키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한·미 FTA 폐기 여부를 참모들과 논의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나흘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FTA 폐기’라는 강경 입장에서 돌아섰을까. 갈지자로 왔다갔다하는 트럼프의 발언 배경에는 3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동맹과 무역전쟁할 때 아니다” 반발 여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허리케인 ‘하비’ 수해지역인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음주 참모들과 한·미 FTA 폐기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며 폭탄선언을 했다. 한·미 간 논의가 진행중이던 일부 개정이나 재협상 논의가 아니라 협정 자체를 무효화하겠다는 발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전날 한·미 정상은 약 40분간의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비해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는 등 돈독한 동맹관계를 과시했던 터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 발언은 백악관 안팎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한국과의 통상마찰로 인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북한이 지난 3일 역대 최대 규모의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이런 주장에 힘이 실렸다. 미 의회에서 무역협정을 담당하는 상원 재무위원회와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의원 4명이 FTA 폐기 반대 을 낸 데 이어 재계 단체들도 반대 성명을 냈다. 톰 도너휴 미 상공회의소 회장은 “우리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FTA 폐기 방침에 반대한다”며 “한·미 FTA 폐기는 단 한 개의 일자리도 만들지 못하겠지만 그 대가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참모들에게 한·미 FTA 폐기를 지시했지만,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 참모들이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동맹관계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의견을 냈다고 보도했다.

◇ ‘FTA 폐기'는 협상전략일 가능성

‘FTA 폐기’라는 정제되지 않은 용어선택이 FTA 개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엄포용’ 전략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의가 한차례 결렬된 뒤 FTA 폐기 준비를 지시했다. 미국은 당시 회의에서 무역적자 확대를 이유로 협정 개정을 요구했으나 한국은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FTA 때문이 아니라며 적자 원인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거론하며 FTA 재협상 등 강경발언을 쏟아냈고, ‘청구서’에 부담을 느낀 우리 정부는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 등을 추진해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FTA 관련 강경발언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FTA 폐기’ 발언이 나왔을 당시에도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하겠다고 위협한 것과 동일한 협상전략을 구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FTA 폐기 등을 통해 미국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한 자신의 대선공약 이행의지를 보임으로써 지지율 반등을 모색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 의사… 트럼프, 목적 달성?

하지만 이런 논의는 백악관이 ‘FTA 폐기’라는 강경 입장에서 한발 물러날만큼의 동기부여를 하기엔 다소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상외교에서도 특유의 비즈니스맨 기질을 선보이는 트럼프에겐 ‘손에 잡히는’ 후퇴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와 맞물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4일 전화통화 이후 백악관과 청와대의 엇갈린 해석이 주목받고 있다. 당시 청와대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미 정상이 미사일지침상 탄두중량 제한(최대 500㎏)을 해제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와 장비를 한국이 구매하는 것에 대해 ‘개념적 승인’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무기 구입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 차원에서 미국이 한국에 필요한 첨단무기 또는 기술도입을 지원하는 협의를 진행하자는 원칙에 합의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재차 트위터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첨단 군사장비를 상당한 규모로 매입하도록 했다”고 자화자찬을 해 청와대 해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FTA 폐기’ 위협과 ‘탄두중량 해제’라는 선물을 통해 미국산 무기구매 관련 한국 정부의 동의를 이끌어낸 다음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