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오산의 미군기지에서 경북 성주 인근으로 이동해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대기하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발사대 4기 수송 행렬이 7일 오전 8시분쯤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통과했다. 경찰이 반대농성자 해산작전을 시작한 지 8시간 가까이 지나서였다.
사드 발사대는 미군에 공여된 기지로 이동해 설치 작업이 완료되면 곧바로 정상 가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 6기로 구성되는 사드 1개 포대가 온전히 자리 잡게 됐다. 발사대 4기와 함께 기지 임시 보강공사를 위한 포크레인과 자갈 등 공사 장비와 자재도 함께 반입된다. 전원 공급용 배터리 등 일부 장비도 포함됐다. 앞서 주한미군은 지난 4월 26일 사드 발사대 2기를 비롯한 핵심 장비를 성주 기지에 반입한 상태다.
격렬히 저항한 400여명, 시간 지날수록 대열 무너져
경찰은 7일 0시무렵부터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반대단체와 주민 등 400여명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작전에 돌입했다. 5시간여 만에 모두 해산해 길을 열었고, 3시간 가까이 지나서 사드 발사대가 이 길을 통과했다. 성주소방서는 오전 5시 현재 경찰 주민 등 27명을 병원에 이송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치료를 받고 귀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산작전에 투입된 경찰병력은 8000여명이었다. 10여 차례 경고방송을 한 뒤 강제해산이 진행됐다. 도로변 인도부터 장악한 뒤 도로에서 연좌시위 중인 주민을 해산하려 했지만, 이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쉽게 해산하지 못했다. 시위자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고 외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일부는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마을회관 앞 왕복 2차로에는 차량 30여대를 세워놓고 그 사이사이에 앉아 버텼다. 30여명은 끈으로 몸을 서로 이어 묶은 채 연좌시위를 벌였고, 일부는 쇠사슬로 자기 몸과 차를 연결하기도 했다. 경찰은 완강하게 버티는 이들을 밀거나 끌어내며 조금씩 마을회관 쪽으로 진입하고 차를 견인했다.
사드 발사대 4기와 공사 장비·자재를 실은 주한미군 차량 10여대는 7일 0시32분 경기도 평택시 미 공군 오산기지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소성리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주한미군 캠프캐럴에서도 공사 장비·자재를 실은 차들이 소성리 마을회관으로 이동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오산과 왜관에서 출발한 사드 차량이 동시에 소성리로 갔다”며 “소성리 마을회관 앞 상황에 맞춰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사드 필요” 첫 언급 후 6년 만에 배치된 1개 포대
사드 1개 포대는 사격통제 레이더·교전통제소·발사대 6기·요격미사일 48발 등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7월 8일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이후 14개월 만에, 2011년 제임스 서먼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반도 사드 배치 필요성을 언급한 뒤 약 6년 만에 1개 포대 배치가 온전히 배치됐다. 그간 사드 문제는 한국 사회의 끊임없는 논쟁거리였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처음 거론된 것은 2011년이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던 제임스 서먼은 미 의회 청문회에서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서먼의 발언 이후 한반도 사드 배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입에 오르내린 건 2014년부터였다. 2014년 6월 3일 커티스 마이클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포럼 조찬 강연에서 “개인적으로 사드 전개를 (미국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사드를 한국에 전개하는 것과 관련해 아직 결심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과 공식 토의를 하지 않은 만큼 검토 초기단계로 보는 것이 맞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된다 해도 하더라도 한미동맹 차원에서 협의와 결심이 이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미국은 계속해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언급해왔다. 같은 해 9월 30일(현지시간)에는 로버트 워크 당시 미 국방부 부장관은 미 외교협회(CFR) 간담회에서 “사드 1개 포대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괌에 배치돼 있다”며 “세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드 포대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드 배치’ 현실로 만든 건 결국 ‘북한’
2016년 1월 6일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하면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대국민담화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 중 하나로 사드 배치를 검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 또 미사일 위협을 감안해 우리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직후에 한·미 당국 간의 주한미군 사드 배치 논의를 공식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도 공식석상에서 한반도 내 사드 배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공식 협의 후 5개월이 지난 7월 8일, 박근혜정부는 한반도의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한민구 당시 국방부장관은 사드 배치 지역은 결정됐고 최종 보고서 작성과 승인 절차만 남겨둔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자 국내외에서 강한 반발이 나왔다. 특히 한반도 사드배치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중국과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성주 주민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의 최대교역국인 중국의 반발은 곧장 경제적인 타격으로 이어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올해 한국 경제 손실 규모만 8조5000억 원으로 예측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0.5%로 경제성장률도 그만큼 떨어질 수 있다.
국내의 반발도 거셌다. 사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와 소음을 우려하는 경북 성주 시민들, 사드 배치로 인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우려하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나왔다. 지역주민과 사드 배치 반대 단체들은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와 발전기 소음 등이 인체에 치명적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사드 배치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와 사드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5월 9일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이전 정권이 배치를 결정한 사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지난 5월 말 청와대도 모르는 사이에 사드 발사대 4기가 국내에 추가 반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국방부는 이달 25~26일 이틀에 걸쳐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업무 보고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기획위는 ‘국방부가 의도적으로 사드 발사대 4기의 국내 반입 사실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기존에 배치됐다고 알려진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4기가 국내에 들어와 있던 것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이 뒤집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 6월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사드 보고 누락 및 환경영향평가 회피 의혹에 대한 청와대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사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가 국민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법령에 따른 적정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진행하라”며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기 위한 시도가 어떤 경위로 이뤄졌으며 누가 지시했는지 추가 경위를 파악하라”고도 했다.
이는 청와대가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시간벌기를 하면서 미·중 등과 ‘사드 난제’를 풀 공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미국에는 절차적 민주성과 투명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드 배치까지 시간을 벌고, 그 사이 사드에 반발하는 중국을 설득해 한·중 갈등과 북핵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위협은 한반도의 사드배치 시간표를 앞당겼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2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 2차 발사 직후 잔여 발사대 4기의 임시 배치를 지시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