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구장은 바라지도 않았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완주할 수 있도록 경기장을 빌려줄 나라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7년째 화염과 폭음에 휩싸인 조국에서 축구협회는 이미 기능을 상실했고, 선수 중 일부는 난민으로 전락했다. 국가대표 경기는커녕 선수 소집도 어려웠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일원으로 2년 동안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소화하는 것,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리아 축구대표팀 얘기다.
시리아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단 한 번도 홈경기를 하지 못했다. 아시아 2차 예선부터 최종예선까지 18경기 중 홈경기로 배당된 9경기를 제3국에서 소화했다. 이란 마슈하드, 오만 무스카트, 말레이시아 세렘반과 크루봉이 이들의 안방이었다. 사실상 모든 경기가 원정이었다. 제3국은 물론 원정지 적진의 관중까지 응원과 격려로 환대했지만, 정작 시리아 선수들이 원했던 것은 국민의 함성이었을 것이다.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국토는 정부군 시민군 이슬람국가(IS)에 의해 3등분 됐고, 인구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민 500만명은 세계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국민 모두가 전몰자, 난민, 인질 아니면 생존자다. 하지만 내전의 원흉으로 지목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나 시아파 동맹국을 끌어들여 포화를 키우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수니파인 시리아에서 권력을 장악한 계층은 인구의 13%에 불과한 시아파 분파 알라위트. 아사드 대통령은 그 세력의 수장이다.
시리아 국기를 가슴에 새긴 유니폼은 선수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사드정부를 대표한다. 선수들은 한때 아사드 대통령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테랑 공격수 피라스 알 카티브(알 쿠웨이트)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복귀하고, 간판 공격수 오마르 알 소마(알아흘리)가 합류하면서 시리아 선수들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사드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위해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시리아는 파란을 일으켰다. 2015년 6월부터 10개월 동안 진행된 아시아 2차 예선 E조에서 6승2패를 기록했다. 일본(7승1무)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최종예선으로 넘어갔다. 보다 강력한 상대와 싸우는 최종예선에서 시리아는 A조 최약체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시작된 최종예선에서도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같은 달 6일 말레이시아 세렘반에서 한국과 득점 없이 비겼고, 그 이후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을 연달아 1대 0으로 격파했다. 그렇게 월드컵 본선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했다.
클라이맥스는 6일 오전 0시(한국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아 최종예선 A조 마지막 10차전 원정경기였다. 시리아는 같은 조에서 본선 진출이 가능한 3개국 중 가장 희박한 가능성을 갖고 10차전에 임했다. 같은 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한국이 승리하면 시리아는 본선 자력 진출이 불가능했다. 이마저 시리아가 이란에 지지 않았을 때 얘기다. 패배하면 그대로 탈락이 확정됐다. 앞서 9차전까지 단 1골도 허용하지 않은 이란의 전력은 시리아를 압도했다. 당연히 패배가 예상됐다.
하지만 전개는 예상을 빗나갔다. 시리아는 전반 13분 만에 타메르 모하메드의 선제골로 앞섰다. 같은 시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서로의 골문을 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경기가 그대로 끝나면 시리아가 본선으로 직행할 수 있었다. 이란은 2골을 넣고 승부를 뒤집었지만 시리아는 포기하지 않고 파상공세로 반격했다.
우즈베키스탄과 무득점 무승부로 경기를 먼저 끝낸 한국의 신태용 감독이 본선 진출을 확정한 것으로 착각해 승장의 표정으로 방송사와 인터뷰하는 동안, 시리아는 1-2로 뒤진 후반 추가시간 3분 알 소마의 동점골로 ‘최종예선 탈락’을 ‘플레이오프 진출’로 바꿨다. 주심의 경기 종료 호각이 울릴 때까지 남은 1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재역전골까지 터졌으면 본선 직행의 주인은 한국에서 시리아로 바뀔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최종예선 마지막 날 A조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 팀은 헹가래부터 친 한국이 아닌 시리아였다.
시리아는 이란과 2대 2로 비겼다. A조 3위에 올라 플레이오프로 진출했다. 승점이 같은 4위 우즈베키스탄을 2골 차이로 겨우 따돌리고 월드컵 본선의 문턱까지 다가갔다. 이제 두 개의 관문이 남았다. 아시아 최종예선 B조 3위 호주, 그 이후에 만날 북중미 4위(현재 미정)와의 대결이다. 쉽지 않지만, 최종예선 경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극복할 수 없는 상대도 아니다. 기적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