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도 북핵에 대응해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北 핵무기 vs 南 재래무기’의 비대칭 전력 구도를 대등한 위치로 돌려놓지 않으면 앞으로 북한의 ‘핵공갈’에 번번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가장 큰 반론은 그렇게 할 경우 우리가 지난 수십년간 일관되게 주장해온 ‘한반도 비핵화’ 명분이 뿌리부터 흔들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국제사회를 설득해 수많은 대북 제재를 이끌어냈다. 그런 입장에서 핵을 갖겠다고 나선다면 그동안의 모든 논리를 스스로 허무는 꼴이 된다. 북한 핵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도 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에다 좀 더 현실적인 이유 세 가지가 있다. ①북한과 동급의 ‘불량국가’ 낙인 ②IAEA(국제원자력기구)의 CCTV 감시 ③대외의존도 높은 경제구조.
한국은 1975년 세계에서 86번째로 핵확산금지조약(NPT) 비준 국가가 됐다. NPT의 기본 취지는 ‘핵의 평화적 이용’에 있다. 핵보유국이 비핵보유국에 원자력 발전 기술을 전수해주는 대신 군사적 목적의 핵무기 개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IAEA의 원자력 시설 사찰을 의무적으로 받게 된다.
북한의 핵개발이 문제가 되는 까닭도 바로 이 대목에 있다. 북한은 1985년 12월 소련에서 민간용 원자력 발전소를 들여오는 조건으로 NPT에 가입했다. NPT의 취지를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뒤 소련의 핵기술을 이전받았다. IAEA의 감독을 받다가 특별핵사찰을 요구한 데 반발하며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했다. 같은 해 6월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에서 탈퇴를 보류했으나 2003년 1월 다시 탈퇴를 선언했다.
한국이 NPT 탈퇴를 선언한다면 북한에 이어 두 번째 탈퇴 선언 사례가 된다. NPT 탈퇴는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핵 기술을 이미 넘겨준 터여서 이전받은 국가가 임의로 탈퇴하는 것을 IAEA와 국제사회는 용인하지 않는다. 북한의 탈퇴 선언은 일방적인 것일 뿐이다. IAEA 측은 북한을 NPT 비적용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불량국가’가 된 북한처럼 한국이 NPT를 탈퇴할 경우에도 불량국가 낙인을 피할 수 없다.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무이했던 ‘NPT 임의 탈퇴’ 행보에 스스로 동참하는 셈이다. 그럴 경우 즉각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받게 된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한국에 판매되던 미국산 핵물질이 일거에 차단된다. 핵연료 공급이 끊기면 이로 인한 원전 가동 중단은 물론 의료용 핵물질도 모두 끊겨 병원의 X레이, CT 촬영 등에도 심각한 차질이 발생한다.
한국의 모든 원전은 현재 IAEA가 설치한 CCTV의 감시를 받고 있다. 북한이 1차 핵위기 때 보인 ‘도발적 메시지’ 중 하나는 IAEA의 CCTV를 건드린 거였다. 한국의 원전에 설치된 CCTV에도 IAEA의 봉인이 찍혀 있다. 조금이라도 손상될 경우 원전 관계자와 외교부 당국자들이 IAEA에 불려가 소명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구조도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NPT 탈퇴=국제사회 경제제재’는 NPT가 존재하는 한 결코 바뀔 수 없는 공식이 돼 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산다. 미국 중국 EU와의 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북한처럼 폐쇄적인 국가도 무역제재에 고난의 행군을 했다. 한국경제는 그런 제재를 맞닥뜨릴 경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자체 핵개발보다 수위는 낮지만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술핵은 미군의 자산이어서 우리 측 의지만으로는 배치가 성사될 수 없다. 또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기존의 명분을 모두 버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술핵도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평가하고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