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vs 시장가 ‘대결’… 상한제 따라 내릴까, 시장 따라 오를까

입력 2017-09-06 09:15

정부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사실상 부활시켰다.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를 거쳐 발효되면 이르면 다음 달이라도, 늦으면 내년부터 서울 부산 등지에 상한제 적용 지역이 나올 수 있다. 정부가 이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분명하다. 높은 가격의 분양 물량이 집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걸 막고, 가격 규제를 통해 주변 집값까지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분양가 상한제가 현실화하자 ‘로또 아파트’란 말이 나오고 있다. 주변 시세보다 몇 억원씩 낮은 가격에 새 아파트가 공급되면 분양받는 사람은 로또 당첨자처럼 앉아서 몇 억원을 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시세보다 싸게 분양된 아파트의 가격이 결국 주변 집값을 따라 오를 거라고 전망한다.

같은 정책을 놓고 이렇게 정반대 시각이 충돌해 있다. 정부가 규제하는 ‘분양가’와 시장에서 형성되는 ‘시장가’의 한 판 대결이 시작됐다. 정부 의도대로 분양가 상한제가 집값을 끌어내릴지, 시장의 힘이 규제를 뛰어넘어 당첨자들에게 ‘로또’를 안겨줄지 주목된다.

◇ “분양가 상한제 지속되면 결국 시세도 따라간다”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 후속조치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 기준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기로 했다. 자금이 없는 실수요자가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한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은 8일 입법예고 절차에 들어간다.

박근혜정부는 2015년 4월 분양가 상한제 적용 기준을 엄격하게 바꿨다. 이후 2년5개월간 적용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 개정 시행령이 발효되면 주택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등할 우려가 있는 지역 중 최근 3개월간 집값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면서 다음 세 가지 요건에 해당하면 상한제가 적용된다.

①최근 12개월간 평균 분양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지역. ②분양이 있었던 직전 2개월 청약경쟁률이 5대 1을 초과하거나 국민주택규모 이하의 청약경쟁률이 10대 1을 초과한 지역. ③3개월간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지역.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분양가는 물론 주변 집값까지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파트를 지을 때 들어가는 돈은 택지비와 건축비로 크게 나뉜다. 택지비는 감정평가액이다. 여기에 연약지반·암반지반 공사비, 간선시설 설치비 등 택지 가산비가 붙는다. 건축비는 기본형 건축비와 가산비로 구성된다. 분양가 상한제 지역에서 분양가는 택지비와 건축비를 합한 가격을 넘을 수 없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재건축 조합 입장에서는 일반분양 수입 감소로 수익성이 나빠져 사업 자체가 어려워 질 수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강남권의 경우 재건축단지에 분양권상한제가 적용되면 현재 시세의 85% 선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분양가 통제가 단발성인 경우에는 청약 과열만 빚을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분양 가격을 안정시키면 시장 가격도 결국은 그에 따라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규제는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으로 제시한 내용만 보면 첫 타깃은 서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경우 지난 3개월 주택매매가격이 1.5% 올라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0.2%)의 2배를 훌쩍 넘은 상태다. 부산도 평균 상승폭이 1.1%로 높다. 분양가격도 서울과 부산은 지난 1년간 각각 5.1%, 14.4% 올라 물가상승률(1.8%)보다 훨씬 높았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전인 지금도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에는 사실상 분양가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주 일반분양 공고를 낸 신반포센트럴자이가 대표적이다. 주택분양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분양보증기관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건설사와 재건축조합이 책정한 분양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시세보다 3억원쯤 낮은 평당 4250만원에 일반분양을 하게 됐다.

그러자 ‘로또 아파트’란 소문이 퍼지면서 지난 주말 모델하우스에 하루 1만여명씩 분양 희망자가 몰려들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분양가상한제는 아파트값을 잡기 위한 목적이지만 실효성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형성된 시장가격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 짓는 일부 아파트 분양가만 강제로 끌어내려 봤자 새 아파트도 결국에는 시장에 따라 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