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의 비보가 전해지자 그를 추억하는 한 네티즌의 사연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엘범에 쌓아 놓았던 마 전 교수의 메일을 공개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마 전 교수가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5일 온라인에서는 “연대생이 추억하는 마광수 교수”라는 제목의 글이 빠르게 공유되며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때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게시자는 마 전 교수와의 추억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마 전 교수와의 인연은 군 복무 시절 시작됐다. 그는 군인 신분인데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전공 탓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어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했던 마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강의 한번 들어본 적 없었지만 마 교수는 바로 평가가 담긴 답장을 보내줬다고 한다. 그가 공개한 마 교수가 보낸 이메일을 보면 습작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고서는 답해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마 교수의 조언은 1년 내내 이어졌다. 귀찮을 법 한데도 무시하는 일 없이 꼬박꼬박 피드백을 해 줬다고 한다.
그러다 게시자는 제대를 하게 됐고, 마 교수의 강의를 수강했다. 당시 마 교수는 감사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마 교수에 대해 “다른 평가는 모르겠으나 연대 제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던 분이었다”며 “오늘 정말 슬프네”라고 마 전 교수를 추모했다.
‘문학 천재’로 불리며 28세에 교수가 된 마 전 교수는 시, 소설, 평론 아우르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 논란에 휩싸이면서 인생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1992년 연세대에서 강의하던 중 음란문서 유포 혐의로 구속됐다. 교수직에서도 쫓겨났다. 1998년 사면복권돼 연세대에 복직했지만 동료와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구속과 면직, 복권 등 우여곡절 끝에 정년퇴임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비난 받는 일생에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다. 또 “나는 방한한다. 고로 자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외롭다”라는 말을 남겼다.
<다음은 게시자 글 전문>
지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나는 군 시절 당시만 해도 작가를 꿈꿨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신분, 문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전공 탓에 주변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다. 이십대 초반의 내가 떠올렸던 건 국문학과 교수로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했던 마교수님. 나는 용기를 내 메일로 조언을 구했다. 그 분의 강의 한번 들어본 적 없는 나였다. 그분은 금새 답을 보내주셨고, 일년 동안 한번도 무시하는 일 없이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해 주셨다. 제대 후 그분의 강의를 수강하며 감사 인사를 드리자 별일도 아니라며 기억도 못하시던 교수님. 다른 평가들은 모르겠으나 연대 제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던 분이었다. 오늘 정말 슬프네. 앨범에 캡처해 두었던 교수님의 메일 몇 개 첨부한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