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전 교수는 1992년 10월 29일 서울 연희동 연세대 강의실에서 검찰에 구속됐다. 그 두 달 전 개정판으로 발간한 ‘즐거운 사라’가 선정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마 전 교수에게 적용된 혐의는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였다.
마 전 교수는 그해 12월 28일 서울형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8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하지만 1심이 끝날 때까지 구속기소됐던 마 전 교수의 직위는 이미 해제된 뒤였다. 3년 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완전히 해임됐다. 1998년 사면을 받고 강단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즐거운 사라’는 지금까지 논쟁을 부르는 소설이다. 교수와 여대생의 관계를 그린 이 소설은 1990년 문학의 윤리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논란을 촉발했다. 문인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졌다. 소설가 이문열은 “구역질을 동반하고 보잘것없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당시 검찰은 도덕성을 파괴하고 청소년의 모방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즐거운 사라’를 음란문서로 규정하고 마 전 교수를 구속했다. 개정판을 펴냈던 출판사 ‘청하’ 대표가 마 전 교수와 함께 구속됐고, 인쇄소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어졌다.
이를 놓고 ‘사법기관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은 김병익 유안진 등 문인 200여명은 표현의 자유 침해와 출판 탄압을 규탄하는 문학·출판인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연세대 재학생들은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 전 교수의 사법처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즐거운 사라’를 놓고 초판(1991년)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다만 비판적 시각은 문학의 윤리만 지적됐던 과거보다 확대돼 남성 편향적 성의식 쪽으로도 쏠려 있다.
마 전 교수는 5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굴곡졌던 생전과 다르게 마지막 순간은 고독했고 우울했다. 그는 생전인 2011년 4월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승종이라는 법학자 출신 국무총리가 특별 지시했대. 날 잡아넣으라고. 영장도 없이 강의실에 쳐들어와 잡아갔어. 그걸로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어. 감옥살이, 연금 박탈, 교수 면직, 정신병, 우울증, 그 많던 머리칼도 다 빠지고, 젠장….”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