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상해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 사는 30대 남성 A씨는 지난 여름부터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귀에 전해지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고,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원인은 ‘육아’였다.
남성에게 육아분담 요구가 커지면서 '피폐해진' 이쿠멘(육아남)이 늘고 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패터니티 블루’(Paternity Blue)라고 불리는 이 증상은 출산 후 산모들이 겪는 ‘매터니티 블루’(Maternity Blue·산후우울증)의 아버지 버전이다. 여성은 호르몬 변화와 깊이 관련돼 있지만 남성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이 증상을 겪는다. 여성과는 다른 형태의 고통인 셈이다.
첫 딸이 태어날 때만 해도 A씨는 부인과 함께 육아를 그럭저럭 잘 해나갔다. 그는 “첫 딸이 태어났을 때는 육아에 적극적이었어요”라며 “집안일, 요리, 기저귀 갈아주기, 아이와 외출 등 뭐든 자신이 있었죠”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회사에서 과장이었다. 일을 마치고 오후 6시면 귀가했고 부인과 함께 아이를 돌봤다. 동갑인 아내도 맞벌이를 하며 열심히 아이들을 길렀다. 그는 “아내는 제게 동등한 육아를 요구했어요. 저 역시 동의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인재개발부장으로 승진했다. 해야 할 일이 늘었고 책임도 그만큼 많아졌다. 일과 가정 양쪽에서 순항하는 중이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눈앞의 성과뿐 아니라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인재를 육성해야 했다. 회사는 사원의 육아에 관대한 편이었는 데도 그는 “사람이 없으면 회사가 멈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강한 압박을 느꼈다.
오후 6시였던 귀가시간은 이제 보통 10시를 넘긴다. 육아를 돕기 위해 술 마시러 나가는 것도 포기했는데, 여전히 “육아를 하나도 돕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내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육아 스트레스로 부부 간 말다툼도 잦아졌다. ‘이혼’이라는 단어도 곧잘 내뱉게 됐다. 그 무렵부터 그의 몸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그는 “아버지, 남편, 부장 등 역할이 많아지면서 스스로를 더 몰아부쳤다.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전혀 없었고 결국 몸이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알아챘다”고 말했다.
그에게 내려진 병명은 우울증. 증상이 심해질 때면 약을 복용하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아내는 그가 약 먹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약을 복용할 정도로 일을 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계속 들었다. 그는 “일도 가정도 망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쉬는 시간도 없다. 그래서 약으로 진정시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을 내던지고 술 한 잔 하러 가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할 수 없다. 과부하가 걸렸지만 도망갈 곳이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