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소탄을 새로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일 이를 전하며 'EMP(Electromagnetic Pulse·전자기파)' 공격까지 가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며 공개한 사진에는 화성-14형 미사일에 장착할 수소탄 탄두부 모형이 찍혀 있었다.
통신은 "핵탄 위력을 타격 대상에 따라 수십킬로톤급부터 수백킬로톤급에 이르기까지 임의로 조정할수 있는 우리 수소탄은 거대한 살상 파괴력을 가졌다"며 "뿐만아니라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 전투부(탄두)"라고 했다.
EMP 공격은 핵탄두를 지상이 아닌 공중에서 폭발시켜 넓은 지역에 고강도 전자기파를 방출, 각종 전자장비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의 전함이 강력한 전자 펄스를 내뿜어 기계군단 ‘센티넬’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키는 무기로 등장했다. 2014년 대통령 암살을 소재로 한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 주변 마을을 삽시간에 정전에 빠뜨리고 휴대전화를 먹통으로 만들며 달리던 자동차를 세우는 가공할 위력이 묘사되기도 했다.
이런 EMP를 북한이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북한이 EMP탄을 개발하리란 관측과 경고는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미국의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은 2014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2004년부터 북한의 EMP탄 개발을 도왔다"고 밝혔다. 핸리 쿠퍼 전 전략방위구상 국장도 지난 6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북한이 미국에 핵 도발을 감행할 경우 ICBM을 통한 직접적인 핵 타격보다 EMP탄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핵탄두를 미국 상공에서 폭발시켜 전력회로망과 컴퓨터망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전자장비를 마비시키려 할 거란 뜻이다. 쿠퍼 전 국장은 "미국 의회의 EMP위원회 조사를 통해 2004년 러시아의 EMP 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북한이 조만간 EMP 기술도 확보하게 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쿠퍼 전 국장이 인용한 미 의회 EMP위원회에 북한의 EMP탄 개발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은 CIA에서 핵무기 전문가로 근무했던 피터 프라이 박사였다. 그는 2011년 '미국의 소리(VOA)' 인터뷰에서 당시 북한이 실시한 두 차례 핵실험이 '슈퍼 EMP' 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EMP 폭탄을 개발한 러시아의 최고 과학자가 "2004년 이후 EMP 디자인 정보가 북한에 사고로 유출됐다"고 진술한 것을 들면서 "핵무기 제조에 성공하면 여기에 슈퍼 EMP 기능을 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몇 년 안에 북한이 슈퍼 EMP탄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의 EMP탄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 전자장비로 구성된 무기운영체계에 심각한 차질이 생겨 즉각적이고 엄청난 보복공격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조선중앙통신의 3일 보도는 울시 전 국장, 쿠퍼 전 국장, 프라이 박사 등의 경고가 현실이 됐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셈이다.
인류가 EMP란 현상을 발견한 것은 1962년이었다. 미국이 태평양의 존스턴섬 상공에서 핵실험을 했는데 1400㎞나 떨어진 하와이의 교통신호 체계와 라디오 방송 등 통신 기능이 중단됐다. 700㎞ 떨어진 곳의 지하 케이블도 손상됐다. 원인은 공중 핵폭발 때 방출된 엄청난 규모의 전자 펄스였다.
미국 러시아 영국 등은 이런 EMP를 무기화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1990년대 이후 초고속통신망의 보급과 함께 전자장비의 사용이 한층 급증하면서 EMP의 파괴력은 핵폭탄에 못지 않은 가공할 만한 것이 돼버렸다. 우리 군 지휘부도 EMP탄에 대비한 방호시설 구축 등을 진행해 왔으나 민간 시설의 경우 대비체계를 갖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