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밝게 해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김주환(36) 감독의 바람은 참 소박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 영화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작품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매일 매일을 버텼다. 집념과 진심, 그리고 뜨거운 열정으로.
영화 ‘청년경찰’의 흥행은 그런 젊음과 패기의 승리였다. 개봉 22일 만인 지난 30일 누적 관객 수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는 관객몰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군함도’ ‘택시운전사’ ‘덩케르크’ ‘혹성탈출: 종의 전쟁’ 등 대작들이 출격한 여름 대전에서 일궈낸 값진 성과. 제작비 70억원 규모의 이 영화가 제대로 일을 냈다.
첫 상업영화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김주환 감독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테다. 중2 때 유학 생활을 시작해 대학까지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공군 통역장교로 복무한 그는 제대 이후 국내 투자배급사 쇼박스에서 홍보와 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면서도 영화에 대한 꿈은 놓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찍은 첫 연출작이 ‘코알라’였다. 이 영화로 2012년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영화제 상영 당시 느낀 벅찬 감상은 김주환 감독이 연출의 길로 완전히 들어선 계기가 됐다. 관객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그 어떤 보상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맛본 것이다.
코믹 액션물 ‘청년경찰’을 구상한 이유 역시 “재미있는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경찰대생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린 영화는 경쾌한 청춘의 단면을 담아냈다. “관객의 웃음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김주환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청년경찰’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코알라’라는 청춘극을 찍으면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 내가 더 해볼 수 있는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르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지 거듭 고민하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어요. 어쨌든 모든 완성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배우들의 역할이 컸던 것 같아요. 진부하지 않되 스릴과 서스펜스가 있어야 한다는 틀 안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짰죠.”
-강하늘의 말에 따르면 시나리오가 80% 정도만 완성된 상태였고 나머지 20%는 현장에서 만들어갔다고 하던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았어요. 시나리오대로 했어도 완성은 됐어요. 근데 현장에서 박서준 강하늘이 너무 (연기를) 잘하니까 20%가 비어버린 거예요. (촬영을 추가로) 더한 셈이죠. 그런 장면이 굉장히 많았어요.”
-박서준 강하늘 두 배우의 합이 돋보였다. 초반에는 다소 의외의 조합인 듯도 했는데,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운이었죠. 박서준씨는 ‘코알라’를 좋게 보고 함께해준다는 약속을 했고. 거기에 강하늘씨가 합류해 희열 역을 채워 줬죠. 둘이 잘 맞을지 여부보다 더 큰 고민은 ‘배우들이 생각한 역할과 내가 그려둔 역할 간에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였어요. 두 사람의 성격이 워낙 좋아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됐어요. 둘이 연기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만 하면 됐죠.”
-현장에서 본 배우 박서준 강하늘에 대해 얘기해준다면.
“좋은 인간들이죠. 언제나 같이 하고 싶은.”
-두 사람의 호흡이 제일 잘 살았던 장면은.
“산행에 나섰다가 발을 삔 희열을 기준이 업고 내려오는 신이요. 저에게는 영화적으로 상징적인 텍스트가 있는 장면이었거든요. 멀리서 봤을 때 한 인물로 보였으면 했어요. 그게 이 영화가 가져가는 우정의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지점이었어요. 찍고 나서도 굉장히 만족스러웠죠.”
-두 주인공이 각성하는 과정에서 여성 납치와 불법 난자 매매 등 강력 범죄를 깊은 고민 없이 다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영화를 온전히 보신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데, 그런 말의 실체가 어딘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다만 두 주인공에게 ‘세상에 이렇게 잔인한 일들이 있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지점이 필요했어요.”
-불법 유사성행위업소인 ‘귀파방’을 굳이 등장시켜야 했냐는 의견도 있다.
“범죄적인 이야기를 다룰 때는 보호받지 않는 이들,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가 동반될 수밖에 없어요. 판타지를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틀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니 그런 지점이 발생하기가 쉽죠.”
-가출청소년 실종 문제를 다룬 지점은 인상적이었다. 그간 간과하고 지나쳤던 어두운 사회 이면을 들춘 게 아닌가 싶다.
“영화적 리얼리티를 위한 설정이지만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저는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어요. 만약 실제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거냐고. 난 정말 나서서 뛸 용기가 있는 사람인가 자문해봐야 하는 거죠. 제가 극 중 인물들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구하자, 도와주자, 힘내자’였어요.”
-여성 납치 사건 해결에 주효한 ‘크리티컬 아워’가 7시간이라는 언급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는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잖아요.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실제로 성인 여성을 대항으로 한 강력범죄의 크리티컬 아워가 7시간인데, 그걸 통해 이 사회의 염원을 드러내보고자 했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이기 때문에….”
-공권력의 무능함을 꼬집는 장면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인간이 만든 문제는 인간이, 정부가 만든 문제는 정부가, 경찰이 못 푼 문제는 경찰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영화에서도 경찰이 풀지 못한 숙제를 젊고 혈기왕성한 경찰대생들이 풀죠. 사회가 다 찌들어 있잖아요. 세상을 정화하는 기운은 결국 젊음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안에 시들어가는 작은 불씨를 지피는, 그게 젊음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세상을 구하는 건 열정’이라는 메시지는 평소 본인이 지닌 신념인가.
“사람에게 열정이 없으면 그 자리에 고여 있게 돼요. 행동하지 않는 건 열정이 없어서죠. 누군가 선한 열정과 마음으로 뛰면 이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요.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모든 건 노력과 열정,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마음에 의한 것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그려나가고 싶은 작품 세계가 있다면.
“인간애와 휴머니즘이 저의 중심가치가 될 것 같아요. 그 안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장르적인 시도는 많이 해보고 싶어요. 초능력이나 오컬트 등 다양한 소재를 새롭게 꾸며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요. 그렇게 해야 관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