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평가 공개…여전히 ‘오답노트’ 반대로 가는 안철수?

입력 2017-09-01 17:52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의당 임시전국당원대표자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안철수 대표가 머리를 넘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의당이 1일 지난 ‘5·9 대선’ 패배 원인을 분석한 ‘19대 대통령 선거 평가보고서’ 전문을 공개했다. 보고서는 연약한 지지층, 가치 없는 모호한 중도성, 적폐청산 요구와 거리두기, 사조직이 중심이 된 캠프, TV토론 전략 실패 등을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대선평가보고서는 기본적으로 과거 실책을 복기하고 이를 개선해나가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안 대표의 행보를 살펴보면 이 ‘오답노트’를 제대로 복기하고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모습들이 엿보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당 대표실에서 문구가 적힌 모니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모호한 ‘극중주의’가 ‘모호한 중도성’의 해결책?

보고서는 모호한 정책과 내용·가치가 모두 없는 중도 표방이 안 대표에게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위원회는 “정책에 대한 후보의 입장이 불분명하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렀다”며 “아무런 가치도 담기지 않고 내용도 없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오히려 ‘MB(이명박 전 대통령)아바타’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강론에 대해서는 “모호한 정책 태도로 호남과 영남 모두에서 외면받았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안 대표가 새로 내세운 ‘극중주의’(極中主義)에 대해서도 여전히 그 실체가 모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 대표는 당권 도전에 나서면서 ‘극중주의’를 내세웠다. 그는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매진하는 것, 극도의 신념을 갖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극중주의”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당권을 두고 경쟁한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극중주의는 한국 정치에서 듣도 보도 못한 구호다. 방향과 신념이 없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이라며 “‘새정치’라는 말이 지금까지 모호했듯이 극중주의라는 구호 역시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이상돈 의원도 안 대표의 극중주의에 대해 “심하게 말하면 영어 단어에 불싯(bullshit·헛소리)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나?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이고 말이 안 되는 얘기다”라며 평가절하한 바 있다.

지난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안철수(왼쪽) 국민의당 대표가 대선 이후 처음 만난 홍준표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여전히 자유한국당과 가까워 보이는 안철수

위원회는 지난 대선이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롯한 ‘적폐청산’ 요구가 강력해진 상황이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민주당과 각을 세우기보다는 자유한국당과 각을 세우는 전략이 필요했다”며 “대선의 핵심 슬로건은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이었으나 안 대표는 계속 여기에 거리를 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히려 적폐청산에 반대한다는 이미지,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에 대해 비판은 하지만 대안은 없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비판했다.

적폐청산 요구는 여전히 강하다. 문재인정부가 여러 인사논란, 살충제 계란 파동 등에도 불구하고 70%를 상회하는 국정수행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데는 검찰개혁·국방개혁 등을 적폐청산을 강조하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정책에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만 하는 것은 자칫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반감을 사기 쉽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안 대표의 행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안 대표는 취임 직후 ‘강한 야당’을 내세우며 정부여당과의 강한 대립을 예고했고,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면키 어려운 한국당과는 친밀한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지난 29일 안 대표는 취임 인사차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만나 훈훈하다 못해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며, 누가 한 말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한 발언으로 문재인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보고서가 비판한 내용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거대 야당 사이 틈에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바른정당마저 최근 이혜훈 대표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지면서 도덕성에 금이 갔다.


◇사조직을 중심으로 운영된 캠프의 독선적 의사결정

안철수 사당화 논란은 계속되는 고심거리다. 위원회는 “캠프는 당 조직보다 안 대표의 사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평가도 나왔다”며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결정된 것을 공조직이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독선적 의사결정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친문패권주의’라 비판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 대표였지만 이제는 ‘패권주의’라는 화살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당대회 과정에서 사이가 더 벌어진 호남 민심을 되돌리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사실상 ‘친안’(친안철수) 대 ‘호남’으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안 대표는 가까스로 과반을 넘겼다.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反) 안철수’ 기류가 형성되면서 국민의당의 정치적 고향이자 지지기반인 호남이 안 대표에게 부정적 여론을 전달한 셈이다. 이는 보고서가 지적한 ‘연약한 지지층’과도 무관하지 않다. 전당대회가 끝나면서 당내 갈등이 일단 봉합되긴 했지만 ‘안철수 사당화’ 논란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안 대표에게는 큰 숙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