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제가(웃음).”
신인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은 18년차 배우 문소리(43)의 짤막한 소감. 출연작 수십여 편을 선보인 베테랑답지 않은 긴장감이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진하게 감돌았다. 첫 연출작을 내놓는 일은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듯했다.
“제가 출연한 작품으로 이런 자리에 많이 와봤잖아요. 근데 오늘 이 자리가 훨씬 긴장이 되고 부끄럽네요. ‘감독이라는 사람들이 참 뻔뻔한 사람들이었구나. 배우보다 훨씬 용감한 사람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 순간.”
문소리가 연출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까지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가 31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그동안 연출 공부를 하며 틈틈이 만든 단편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 세 편을 묶어 71분짜리 장편으로 내놨다.
영화는 18년차 여배우의 일상을 비춘다. 문소리가 연기한 주인공의 이름 역시 ‘문소리’다. 마치 문소리의 실생활을 들여다보는 듯 매 장면 현실감이 묻어난다. 집에서는 평범한 며느리 딸 엄마 아내로 아등바등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데, 밖으로 나와 대중 앞에 선 모습은 마치 호수 위 백조 같다.
극 중 등장하는 여배우의 일상은 이런 식이다. 원하는 배역에 캐스팅 제안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역할은커녕 1년에 한 작품 겨우 할까 말까 싶을 정도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아재’들은 화면보다 실물이 낫네 마네, 얼굴이 예쁘네 마네, 성형을 했네 마네 하는 등의 무례한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보는 이마저 짜증이 치미는 이런 상황들을 문소리는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영화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안 가는 대사들을 툭툭 내뱉을 때마다 속이 후련해진다. 성글지만 진정성이 묻어나는 연출은 극의 몰입을 돕는다. 가장 빛나는 건 역시나 ‘믿고 보는 배우’ 문소리의 야무진 연기력.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유려한 흐름을 잡아 나가는 건 오롯이 그의 힘이었다.
“영화 일을 할수록 영화가 더 좋아지고 영화에 더 관심이 많아져 직접 만들게도 됐다”는 문소리는 “‘여배우는 오늘도’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이다. 그렇지만 100% 나의 진심이기는 하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극 중 상황과 유사한 감정을 느낀 경험이 많다”고 얘기했다.
극 중 문소리는 외모에 대한 고민을 숨기지 않는다. 매니저에게 ‘내가 예쁘냐 안 예쁘냐, 매력이 있냐 없냐’ 물으며 신경질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배우에게 중요한 건 연기력이 아니라 매력인 것 같다”는 대사도 인상적이다.
“20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박하사탕’으로 데뷔했을 때 ‘여배우할 만큼 예쁘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예쁘다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됐죠. 이창동 감독님께 물었더니 ‘너는 충분히 예쁘고 아름답다. 근데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예뻐서 그런 것’이라고 하시더군요(웃음). 지나고 보니 배우에게 중요한 건 매력과 에너지인 것 같아요. 연기력 외모 말투 말솜씨 생각 등이 다 포함되는 거죠.”
문소리는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사는 건 녹록치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불평하며 화내고 기분 안 좋은 상태고 지낼 순 없지 않나”라고 현실을 직시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얼 하는 게 좋을까. 계속해서 얘기를 나누고 반 발짝이라도 움직여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이 여배우로 살면서 당연히 해야 할 고민과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개봉하게 된 것도 그 일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독의 길을 계속 걸을지에 대해선 “내 인생이지만 내게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입장을 유보했다. 문소리는 “재미나고 의미 있는 이야기이거나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또 연출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 자리가 어디이고 내가 1번으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엄격하게 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