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논란이 된 ‘공관병 갑질’ 사건과 관련해 전수조사 방식으로 ‘갑질 실태’를 점검한 결과 국방부, 외교부, 문체부, 경찰청에서 총 57건의 갑질 사례가 적발됐다고 31일 밝혔다.
정부는 국내 45개 중앙행정기관 전체의 공관, 관사 근무자와 의무복무 군인, 의무경찰 중 갑질에 노출되기 쉬운 지휘관 차량 운전요원까지 총 2972명에 대해 갑질 피해를 점검했다. 또 외교부 재외공관 등 페쇄성이 높은 근무지의 요리사 등 해외근무자 3310명을 대상으로도 점검을 진행했다.
효과적인 점검을 위해 9일부터 15일까지 각 부처가 자체점검을 실시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국무조정실에서 18일부터 21일까지 불시점검을 실시했다.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지시나 강요가 없었는지, 개인 호출벨을 사용하고 폭언을 하는 등 인권 침해적 요소는 없었는지를 중심으로 점검이 이뤄졌다.
◇ 갑질 돋보기
①국방부
국방부에서 적발된 사례의 경우 갑질 논란을 촉발시킨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관병에게 부대장의 텃밭을 가꾸게 하고, 호출벨을 이용해 휴식을 방해하고, 휴가를 제한하는 등 인권을 침해한 행위는 박 사령관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었던 갑질 사례였다.
공관병 업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을 시킨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관사의 가구를 직접 제작한 사례부터 골프연습장 보수작업을 시킨 사례도 있었다. 관사 내 축구 골대를 직접 만들도록 명령한 일도 있었다. 공관병이 정원에 비해 초과 운용되는 사례도 나왔다. 공관병 뿐만이 아니었다. 운전병에 대한 갑질 사례도 적발됐다. 몇몇 운전병들은 운전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꼬집히거나 주먹으로 구타를 당했다.
②외교부
근무지가 외국에 있어 폐쇄성이 높은 재외공관의 경우 피해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갑질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관저 요리사의 경우 통금시간을 오후 9시로 지정하는 등 운신의 자유를 침해했다. 심지어 휴무일까지 외박을 제한하기도 했다.
주말에 개인적인 용무를 시켜 휴식을 방해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공식 업무가 끝난 저녁시간에 관저 비품을 수리하도록 시키거나 휴가시기를 제멋대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격 모독성 언행이나 폄하 발언도 다수 발견됐다.
③경찰청, 문체부
경찰청에서는 부속실의 의무경찰을 임의로 일부 지휘관 관사로 배치하는 사례가 적발됐다. 총 12명의 의경이 이처럼 꼼수배치를 받아 지휘관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지휘관 친목 모임 때는 음식점에서 직접 음식을 나르기도 했다. 문체부의 경우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사적인 용무에 통역직원에게 수행한 사례가 접수됐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관용차 운행을 지시하기도 했다.
◇ 갑질 근절… 대책은?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군 공관병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0월까지 군내 공관병 122명을 전투부대로 전환 배치한다. 테니스장과 골프장에 배치된 59명은 즉각 철수된다. 또 경찰 간부 관사에 배치된 부속실 의경 12명도 2일 전원 철수조치 됐고, 경찰서장급 이상 배치되었던 지휘관 전속 운전의경 346명도 9월중 철수할 예정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단순히 ‘철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총리는 “갑질을 예방하고 처벌을 강화하도록 공무원 행동강령과 기관별 운영규정도 정비하겠다”며 “피해자가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공직자에 대한 교육도 강화된다. 국방부, 경찰청 등 의무 복무병이 있는 기관의 간부들과 재외공관장 등 해외기관장 등을 대상으로 갑질 근절 교육이 반기별로 실시된다. 특히 국방부는 새로 진급하는 장군과 그 배우자가 함께 장병 인권교육을 듣도록 할 방침이다. 논란이 됐던 사령관 갑질 사건에서 배우자의 횡포도 문제가 됐던 만큼 ‘가족에 의한 갑질’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