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뗏목'이 된 불개미떼… 허리케인에 맞선 생존본능

입력 2017-08-31 12:08
미국 텍사스주 피어랜드의 홍수지역에서 발견된 불개미떼. 플리커 캡처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등 동남부 지역을 강타해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수재민 신세로 전락했다. 주택과 상가 등 건물이 파손됐고, 전기 공급이 끊기는 등 수십만명이 불편을 겪고 있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속절없이 당하는 동안 놀라운 생존본능을 발휘한 '불개미'의 모습을 미국 월간 아틀란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반 개미보다 공격성이 강한 불개미들의 홍수 생존 전략은 '합체'였다.

“세상에나. 개미 연구자로 지낸 시간을 통틀어 이런 건 본 적도 없어요” 

미국 텍사스대학의 곤충학 큐레이터 알렉스 와일드는 이날 오후 텍사스주 쿠에로의 강에서 불개미떼 수만 마리가 서로 뭉쳐 거대한 '뗏목'처럼 범람한 물 위를 떠다니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를 곧바로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 위 사진에서 물 위에 떠 있는 붉은 원반 형태의 물체는 불개미떼다.

불개미들이 홍수 때 뗏목을 이루는 건 오랜 시간 지녀온 생존본능이다. 와일드는 “불개미들은 실제로 홍수를 좋아한다. 그들이 이동하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공격적인 개미들은 홍수가 났을 때 수백만 마리가 서로의 다리를 물어 몸과 몸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살아 있는 뗏목'을 만들고 물길을 따라 마른 땅을 찾아 이동한다는 것이다.

하비 정도의 허리케인을 만나면 이보다 훨씬 거대하고 밀도가 높은 '매트'를 형성한다. 와일드는 “홍수로 난민 신세가 된 불개미들은 정말 큰 뗏목을 형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 크기는 믿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쿠에로의 강에 떠다니는 불개미떼. 트위터 캡처

2005년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의 곤충학자 린다 부는 다리와 허리에 알 수 없는 뾰루지로 가득 차 입원한 피난민을 발견했다. 그는 “의료 전문가 중 누구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후 부이는 불개미 독을 조사했다. 2011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물에 빠진 불개미는 평소보다 165% 많은 독을 갖고 있어 더 위험하다. 또 홍수로 인해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 이 때문에 그는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불개미를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불개미들이 만든 뗏목에도 크립토나이트(영화 ‘슈퍼맨’에 나오는 가상의 화학원소로 슈퍼맨의 치명적 약점)가 있다. 바로 주방용 세제다. 미끈미끈한 세제는 불개미의 공기층 형성을 막아 불개미를 익사시킨다. 부이는 “(세제가) 정식 살충제는 아니지만 뗏목의 표면장력을 깨고 침몰시킨다”고 말했다.

사나운 데다 독성까지 지닌 불개미는 여러모로 인간에게 골칫거리지만, 적어도 한 가지 장점은 있다. 불개미는 진드기를 먹는 것을 즐긴다. 와일드는 “불개미가 상륙한 곳에는 한동안 개미가 기어다니겠지만 진드기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