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을 1년 미루며 시간을 벌었지만 녹록치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 민감한 수능 개편안 발표를 미뤄 정책 신뢰도가 떨어지고 학교 현장에 혼란이 초래됐다. 그러고도 기존 1, 2안을 뛰어넘는 진일보한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더 큰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면서 대입 변별력도 확보하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왜 미뤘나
교육부는 지난 10일 발표한 수능 개편 시안에서 두 가지 절대평가 전환 방식을 제시했다. 1안은 국어 수학 탐구는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2안은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식이다.
두 안 모두 현재 대입 환경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이지 못하면서 문·이과 통합형 인재를 추구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과도 엇박자를 낸다는 지적이 많았다.
1안은 국어 수학 탐구 등으로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절대평가로 전환된 과목도 최상위권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주진 못한다. 2안은 대학들이 정시모집을 없애거나 줄일 가능성이 높고 대학별 고사 부활 우려까지 제기됐다. 전 과목을 90점 맞은 학생이 한 과목을 89점 맞고 나머지를 만점 맞은 학생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불합리성도 내포돼 있다.
교육부 관료들은 이런 부작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 등에 '적폐'로 몰린 상황이었다. 졸속이더라도 새 정부 요구대로 절대평가 전환 방안을 내놔야 하는 처지였다. 졸속 개편에 따른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와 여당에선 교육 분야가 국정 수행 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개를 들었다.
지난 17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지만 유독 교육 분야만 35%로 낙제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는 개편안을 밀어붙일 경우 대입 제도의 특성상 뒤로 물리기도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내년 8월로 결정을 미뤄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끼칠 악영향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어떤 방안 나올까
관건은 변별력 확보 방안에 있다. 대입은 결국 경쟁이다. 누군가 합격하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한다. 교육 당국의 역할은 학생 학부모 대학 등이 납득하는 경쟁의 ‘룰’을 만드는 일이다.
교육부는 우선 미래의 수능이 대입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할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점수로 줄을 세워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도구로 활용할지, 아니면 대학에서 공부할 역량을 갖추었는지 측정하는 용도로만 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당락을 결정하는 역할을 유지한다면 절대평가 전환은 또 다시 벽에 부딪힐 전망이다. 전면 절대평가는 변별력에 허점이, 일부 과목 절대평가는 한두 과목에 학습 부담이 쏠리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또한 교육부가 도입할 예정인 고교 내신 절대평가(성취평가제)와 수능을 조화시켜야 한다. 고교 내신과 수능이 동시에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상위권 대학들은 학생 선발에 애를 먹게 된다. 대학별 고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학습 부담 감축도 숙제다. 문 대통령이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려는 목적은 불필요한 경쟁과 학습 부담을 줄여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수능 과목을 대폭 줄이거나 시험 범위를 줄여야 한다. 학습 부담을 줄이지 못하면 2015 개정 교육과정 정착도 어려워진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학습 부담을 줄여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교실 혁명을 이룬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수능 부담이 고교 교실을 짓누르는 상황이 계속되면 문제풀이식 암기식 학습을 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 반응은 엇갈린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실장은 “앞으로 1년을 어떻게 쓰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대입 제도를 쉽게 결정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양정호 성대 교육학과 교수 “갈등만 1년 유예됐다. 시간 벌기일 뿐”이라면서 “현재 장관이 계속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고 지방선거를 의식해 여론 때문에 물린 것인데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