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라카 탈환을 위한 시내 공방전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현지 언론인이 라카 주민들의 고통스런 실상을 전했다.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상징적 수도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삶의 위기는 전쟁이 가져온 비극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8일(현지시간) ‘팀 라마단'이란 가명을 사용한 라카 현지 언론인의 편지를 소개하며 “도시에 남은 주민들이 극도의 공포와 굶주림 속에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고 현지의 상황을 전했다.
라마단은 편지에 “본격적인 군사작전이 시작된 지 2주 만에 전기도 물도 끊겼고, 고립된 도시에선 연료와 생필품마저 바닥났다”면서 “주민 절반 정도는 풀이나 뿌리로 만든 수프로 연명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석유도 거의 떨어져 낡은 옷이나 가구, 나일론 봉지를 태워 취사를 한다”면서 “풀뿌리 수프를 처음 입에 댄 아이들은 쓴맛에 먹지 못하다가도 허기를 견디지 못해 구역질을 하며 억지로 삼킨다”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주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편지에 옮겼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포위된 IS의 근거지에서 주민들은 이웃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공습의 굉음과 교전의 총성만이 가득한 거리로 주민들은 함부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움직이는 대상은 IS 저격수의 표적이 되고 곳곳에 지뢰와 사제폭발물이 흩어져 있다.
더욱이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아 온 IS가 주민들이 폐허로 변한 도시를 떠나지 못하게 막기 때문에 이들의 고립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이다. IS 차량이 거리 한복판에 네 명의 시신을 옮겨놓은 뒤 “탈출을 시도하다 처형됐다”는 협박 문구를 달아놓은 적도 있다.
고립무원의 상태로 IS의 인질까지 된 주민들은 거리 너머의 이웃들에게 소리를 질러 공습 소식과 서로의 생사여부를 전달하거나 집에서 집으로 이동하기 위해 벽에 통로를 뚫는 것으로 전해졌다. 처참한 도시의 모습을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하며 IS에 반대하는 전단지를 배포해 온 라마단은 통신 기기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 파손된 자동차에서 배터리를 찾아다닌다고 밝혔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에 내몰린 주민들은 포성이 멈출 동안 먹거리와 생필품을 구하러 집을 나서는데 “쓸 만한 물건을 건진 이웃에게 출처를 물으면 주로 숨진 이웃의 집에서 가져온 것이란 대답이 돌아온다”고 라마단은 말했다. 주민들은 물도 폐쇄된 옛 우물에서 간신히 길어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저녁이 되면 공습의 불안에도 주민들은 한데 모여 서로 가져온 조악한 음식들과 물품을 나누며 서로의 위안이 되어주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진다고 라카의 기자는 전했다. 라마단은 “IS가 사라지면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겠다고 동료 기자 두 명에게 약속한 적이 있다”면서 “동료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지만 나는 라카를 떠나지 못하는 5000여 가정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함께 남겠다”는 다짐도 남겼다.
미군 주도 국제동맹군과 쿠르드·아랍연합 ‘시리아 민주군’의 본격적인 라카 함락 작전이 시작된 지 3개월 동안 국제동맹군은 IS로부터 도시의 절반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치열한 교전 속에 70%가 파괴된 도시에선 지금껏 1300여명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구성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