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66) 전 국가정보원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원 전 원장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 파기환송심은 당초 원 전 원장에게 '유리한' 재판이었다. 2015년 7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는 "선거법 위반의 근거가 된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원 전 원장은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파기환송 재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결과는 법정구속이란 '반전'으로 나타났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30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거나 비방하는 인터넷 글을 게시하도록 한 혐의(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대로 일부 증거의 증거능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거법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2012년 8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게시한 정치 관련 글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당민주주의 하에서 대통령 후보자는 정당 당원으로 공천을 받아 선거운동을 거쳐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이후에도 당원으로 남아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며 “현직 대통령을 지지·옹호하는 내용의 활동은 정치관여 행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정치 관여를 하고 나아가 특정 후보자의 선거운동으로 나아갔다”며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고 반대하는 것으로서 개인과 정당의 정치활동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등 헌법과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 기관이 이처럼 장기간 조직적으로 정치, 선거에 관여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1심과 2심을 거치며 논란이 된 선거개입에 대해서도 각 정당이 후보자를 확정한 이후 지지 또는 비판한 글은 선거운동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관련 박근혜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다른 후보자를 비방한 것은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여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며 “원 전 원장은 부서장 회의에서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선거결과에 영향을 주기위한 활동을 국정원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2심 재판부가 선거법 위반을 인정한 근거로 삼은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은 대법원 취지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작성자가 법정에서 작성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만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심리전단국 직원들을 동원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을 통해 2012년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날 재판에서 원 전 원장과 함께 기소된 이종명(60)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59)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