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낙태한 쌍둥이의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을 해주겠다며 수억원을 받아 챙긴 무속인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심형섭)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A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서울 강서구에서 점집을 운영하며 2011년 남편의 사업 문제로 찾아온 B씨에게 2015년까지 씻김굿 명목으로 133회에 걸쳐 5억6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B씨에게 “씻김굿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낙태한 쌍둥이의 한(恨)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결국에는 자식들에게 신벌이 내려져 무속인이 될 것”이라며 씻김굿을 하도록 유도했다. 씻김굿을 시작한 이후에도 A씨의 요구는 계속됐다.
그는 쌍둥이의 영혼에 각각 ‘승억이, 승옥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아이들의 영혼이 자신에게 빙의된 양 B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마음 알앙. 속상해 하지망. 엄마 사랑해' ‘꼬기(고기) 승억이 승옥이 마이마이(많이많이) 먹었쪄요. 너무너무 조아요(좋아요)' ‘엄망 메리크리스마스에용’ 등등 어린아이 말투를 흉내 낸 메시지였다. 쌍둥이 영혼이 실제로 B씨 주변에 머무르고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검찰은 “씻김굿은 혼령을 위로하며 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굿으로 통상 1~3회 하는 것이 정상”이라면서 “A씨는 많게는 한 달에 3차례씩 수년에 걸쳐 100여 차례나 씻김굿을 한 데다 다른 무속인과 달리 B씨를 속이기 위해 빙의된 양 문자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B씨를 속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무속행위는 요청자가 그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얻게 되는 마음의 위안 또는 평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비록 요청자가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속인이 요청자를 속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피해금이 5억6000여만원에 달한다는 검찰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은 B씨와 남편 명의 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증거로 제시하며 B씨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씻김굿 비용으로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인출된 돈이 굿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