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미사일 쏜 뒤 늘 해온 말 “美 지켜보겠다”

입력 2017-08-30 08:14

이번에도 김정은의 말은 같았다. “미국의 언동을 지켜보겠다.” 일본 상공을 지나도록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날인 3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발사훈련을 지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9번째 탄도미사일 발사였고, 김정은의 ‘현지지도’ 발언이 나올 때마다 내용은 ‘미국’을 향한 것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발사훈련에는 유사시 태평양작전지대 안의 미제침략군 기지들을 타격할 임무를 맡고 있는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 부대들과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 화성-12형이 동원됐다"고 밝혔다. 일본 상공을 통과해 북태평양에 낙하한 미사일이 IRBM(중장거리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임을 확인한 것이다.

◇ "미국의 언동을 계속 주시할 것이다"


통신은 이번 훈련이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대응한 무력시위의 일환이며, 발사된 미사일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오시마(渡島) 반도와 에리모갑 상공을 가로질러 북태평양 해상에 설정된 목표수역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은의 ‘말’을 전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이번 탄도로켓 발사훈련은 우리 군대가 진행한 태평양상에서의 군사작전의 첫걸음이고, 침략의 전초기지인 괌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이다. 앞으로 태평양을 목표로 삼고 탄도로켓 발사훈련을 많이 하여 전략 무력의 전력화, 실전화, 현대화를 적극 다그쳐야 한다.”

이렇게 말한 김정은은 미국을 얘기를 꺼냈다.

“미국이 저들의 행동을 지켜볼 것이라고 한 우리의 경고에 호전적인 침략전쟁 연습으로 대답했다. 오늘 전략군이 진행한 훈련은 미국과 그 졸개들이 벌려놓은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단호한 대응조치의 서막일 따름이다.”

“극도로 첨예한 정세를 완화할 데 대한 우리의 주동적인 조치를 외면하고 뻔뻔스럽게 놀아대는 미국과는 점잖게 말로 해서는 안 되며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에 또 한 번 찾게 되는 교훈이다.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의 언동을 계속 주시할 것이고, 그에 따라 차후 행동을 결심할 것이다.”


◇ "미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다"

김정은은 지난해부터 각종 미사일 발사장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한 발사시험 뒤에는 언제나 ‘김정은의 현지지도’ 소식이 북한 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서방 언론이 조선중앙TV의 제공 화면을 이용해 보도한다는 걸 북한도 잘 알고 있다. 김정은과 미사일을 연결시키는 북한의 화면 연출 기법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김정은은 자강도 무평리 인근에서 한밤중에 하늘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이 솟아오르는 장면을 지켜봤다. 이튿날 조선중앙통신은 어김없이 김정은의 ‘말’을 전했다.

“오늘 우리가 굳이 대륙간탄도로켓의 최대사거리 모의시험발사를 진행한 것은 최근 분별을 잃고 객쩍은 나발을 불어대는 미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다. 미국의 전쟁 나발이나 극단적 제재 위협은 우리를 더욱 각성 분발시키고 핵무기 보유 명분만 더해주고 있다.”

“미국놈들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이 땅에 또다시 구린내 나는 상통(얼굴)을 들이밀고 핵방망이를 휘두르며 얼빠진 장난질을 해댄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차근차근 보여준 핵전략 무력으로 톡톡히 버릇을 가르쳐줄 것이다.”


◇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청산되지 않는 한…" 

‘미국이 ~한다면’이란 김정은의 화법은 같은 달 4일 화성-14형 1차 발사 후에도 나왔다. 역시 조선중앙통신은 발사 다음날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을 향한 것이었다.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눈여겨보았을 미국놈들이 매우 불쾌해 했을 것이다. 독립절(미국 독립기념일)에 우리에게서 받은 '선물 보따리'를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 같은데, 앞으로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 보따리들을 자주 보내주자."

"미국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4형 시험발사까지 단번에 통쾌하게 성공함으로써 우리 당의 절대적인 권위를 결사옹위했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자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선택한 핵 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자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무척 강조했다. 그런데 단서를 붙였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거꾸로 읽어볼 여지가 듬뿍 담긴 표현을 그는 사용했다. 뒤집으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청산된다면 협상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입에서 '협상'이란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그가 이런 발언을 통해 미국에 보낸 '메시지'는 이렇게 정리된다. "우리는 마침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수단을 갖췄다. 이제 제대로 된 협상 제안을 해보라."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