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경계선 지능, 치료할 수 있다

입력 2017-08-29 18:36
C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다. 어려서는 낯가림 많고 얌전한 아이였는데 유치원에서부터 산만해지고 수업에 참여가 안 되고 돌아다니며 친구들과도 잦은 다툼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해력이 다소 떨어졌다. 지나치게 수줍어 하다가도 아이들에게 돌발적인 행동을 하니 차츰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이후에는 수업을 전혀 따라갈 수 없어 특수 교육해야 할 거 같다는 권고를 들었다.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C는 중학교 2학년부터 갑자기 엄마에게 욕을 하고 문건을 던지고 폭행을 하기 시작해 병원을 찾았다.

C는 할머니와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었다. 그런데 C의 엄마는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다퉜다. 심지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하는 일도 있었다. 고부갈등으로 힘에 겨웠던 엄마는 차츰 우울해지고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조그마한 일에도 화가 났으며 C가 말을 듣지 않으면 C에게 모든 분노를 폭발했다. 시어머니에게 불만이 많은 C의 엄마는 남편과도 날마다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그럴때면 C는 두려움에 떨며 부모의 눈치만 보고 지냈다. 

그렇다고 C의 부모가 늘 C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부가 다투거나 아이에게 화를 낸 다음에는 아이가 안스러운 마음에 C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한없이 잘 대해 주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너무 심하게 야단 맞는 C를 안쓰럽게 생각, 엄마와 달리 늘 허용적으로 대해 주었다. 엄마 자신이 아이를 양육하는데 일관성이 없었을 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 사이에도 일관성이 없었다.

내원 후 검사를 해보니 C는 72 경계선 지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70이상 85 미만의 지능, 지적 장애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정상지능 이하의 지능)이었다. 하지만 자세한 프로파일을 살펴 본 후 추정되는 잠재적 지능은 원래 정상적 지능의 범주에는 들었을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아이가 유치원 때 선생님이 산만하다고 해 검사를 권유하였을 때 지능은 85정 정도였다. 정서가 불안정하다고 치료를 권유받았으나 가족간의 불화로 힘들었던 부모는 아이의 치료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점차 더 산만해졌고, 외출을 해서도 행동이 통제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정작 필요할 때는 자신감이 없었고 우물쭈물 하며 할 말도 못하는 아이였다.

초등하교 이후 C의 가족은 분가하여 할머니와 따로 살면서 집안에서의 싸움이 많이 줄었지만 C는 여전히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불안했다. 조그만 소리에도 잠을 깨 잠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자다가 깨 놀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울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처럼 유아기에 가족 간의 불화로 인한 잦은 다툼, 가족 폭력에 노출돼 자라온 아이들은 폭력성을 보고 모방하며 충동적이고 산만해진다. 소리에 대한 감각적인 예민성이 생겨 조그만 소리에도 잘 놀라고 학습능력이나 지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경계선 지능의 아이들은 정상지능의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장애아로 배려도 받지 못하며 가장 힘들게 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동시에 집에서도 부족해 보이면서도 때로는 또래와 유사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가족들도 헷갈린다. 아이의 문제를 인정하기 힘들고, 아이의 능력 이상을 기대를 하고 다그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C의 엄마는 아이와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답답한 행동을 보면 화가 나서 ‘병신’ ‘바보’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오고 화를 자제 할 수 없었다. 또 지켜보는 남편에게도 화를 심하게 내 부부갈등도 점차로 다시 심해졌다. 아빠는 ‘아내가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다’ 고 아내만을 원망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축적된 분노를 C는 엄마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다. 

우선 C의 엄마의 우울증을 치료해야 했다. 엄마의 우울이 나아지면서 아이의 폭력 행동도 사라졌다. 아이의 폭력은 항상 엄마의 짜증스런 말 때문이었다. 선행 사건이 제거되자 폭력은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또 경계선 지능이라고 하더라도 C처럼 정서적인 요인이 있는 아이들은 정서에 대한 치료를 하게 되면 잠재 지능까지는 회복이 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