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중부 돈드고비 지역 셍차강에서 만난 엘덴 벌렉(45)씨는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환경 난민’이다. 셍차강 인근 초지에서 유목민으로 살던 벌렉씨는 이상한파로 기르던 가축을 대부분 잃고 대대로 이어왔던 유목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고향 인근에 한국의 도움으로 조성된 조림지에서 경비·관리원으로 일한다.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난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던 그에게 새로운 직업은 무엇보다 보람 있는 생업이 됐다.
벌렉씨의 일터 ‘고양의 숲’은 기후변화 대응 비영리 시민단체인 ‘푸른아시아’(이사장 손봉호)와 경기도 고양시가 지난 2009년 현지에 조성한 ‘녹색 실험’의 공간이다. 황사의 발원지인 고비사막과 가까운 이곳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지난 15일 찾아간 현지 조림지에서는 식재한 묘목에 물을 주는 관수(灌水)작업이 한창이었다. 메마른 대지에 내리쬐는 땡볕 속에서도 현지 주민 직원들은 부지런히 양동이로 물을 퍼 날랐다. 황무지에 열을 맞춰 낸 작은 구덩이에선 위성류(소훼나무), 비술나무, 노랑아카시, 포플러, 차차르간(비타민 나무), 우흐린누드(‘소의 눈’이란 뜻으로 ‘블랙커런트’의 몽골 명칭) 등의 나무들이 뿌리를 뻗어가고 있었다. 모두 척박한 토양에서도 생착률이 높은 수종들이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된 고된 작업이지만 작은 그늘을 드리울만큼 자란 나무 곁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 이들의 표정에도 생기가 돌았다. 셍차강 토박이인 주민 직원 사보카 랍가(74)씨는 “과거엔 흙과 모래뿐이었던 곳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해 너무 좋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움직이는 것이 좋다”면서 젊은이들도 힘에 부칠만한 물주기 작업이 “전혀 힘들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6명의 손주들을 둔 랍가씨는 “계속 관리해나가면 손주들이 장성할 때쯤엔 완전한 숲이 될 것으로 믿는다”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나타냈다.
한국의 지자체와 비정부기구(NGO)가 ‘나무를 심고, 사람을 심는다’는 슬로건을 기치로 8년 동안 집념 있게 가꿔 온 푸른 묘목들은 자연 환경 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들의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꿔놓았다.
조림지가 들어선 곳은 과거 비어있던 황무지로 사막화 지표식물인 ‘할흐간’조차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다. 2009년 조림사업장을 구축해 나무를 심고 관리하면서 1년생 초본(草本)과 다년생 초본 등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후 사업장에 심은 관목과 교목 등이 초본과 어우러져 식물의 천이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 줄 정도로 조림지의 모습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현지 특성상 인근 유목민들은 가축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축을 몰고 다녔는데 가축들이 ‘고양의 숲’에 자란 풍성한 풀을 보고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오려고 해 울타리를 자주 보수할 정도였다.
이동형(56) ‘푸른아시아’ 홍보국장은 “조림지 조성 초기엔 현지 주민들도 식물은 가축들의 먹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했다”면서 “주민들 스스로 가축들이 풀과 묘목을 먹어치우지 않도록 단속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16일 현지 환경청 사무소에서 열린 주민 직원 간담회는 현지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조림지가 조성되기 이곳에선 주변 마을마다 바람에 날려 온 모래가 담벼락 안팎과 길 위에 쌓일 정도였다. 일주일에 최소한 두번 이상 주민들이 모두 나서 삽과 양동이 등을 이용해 쌓인 모래를 치웠고, 심지어는 현지 벽돌공장에서 트럭을 동원해 일주일에 한번 이상 모래를 실어 나르기까지 했다.
과거를 회상하던 주민들은 조림지에 나무를 심은 이후 거주지역으로 유입되는 모래와 먼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나무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확연해지면서 주민들은 본인들의 손으로 키워내고 있는 나무들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변화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현지 지방 정부도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모래바람을 막는 방사림(防沙林)의 효과를 목격한 인근 마을에서도 조림지 조성을 요청하고 나섰고 현지 지자체는 자체 예산을 투입해 10헥타르(ha) 규모의 조림지를 조성해 6000여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고양의 숲’이 2019년 한국의 도(道) 단위인 현지 지자체에 이양되는 것을 앞두고 바람직한 ‘학습효과’가 생겨난 셈이다.
사막 마을의 ‘효자’로 거듭난 조림지는 공동체의 미래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생계를 위한 맞춤형 취로사업과 수익사업까지 제공하고 있다. 나무를 심고 키우는 소중한 부업이 생겨났고, 비타민 나무와 블랙커런트 등 유실수의 소출은 주민 공제회를 통해 공동체의 수익금으로 적립됐다. 차차르간 열매는 현지에서 1㎏당 5000 투그릭(약 2300원) 정도에 판매되는데 지난해부터 주민 공제회에 적립된 판매 수익금이 260만 투그릭(약 120만원)에 이른다. 몽골 공무원의 한달 월급이 30만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조림지 주민 직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지역방송에 자막광고를 내는 등 판로 모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앞서 조림지가 형성된 이후 토양이 어느 정도 복원되면서 노지에서 감자농사가 시작된 것도 새로운 변화의 단초가 됐다. 황무지가 소출을 내기 시작했고, 이후 2013년 주민들의 요청으로 ‘푸른아시아’는 영농교육을 실시하고 종자와 모종을 공급했다. 유목의 전통이 강한 곳에서 농사는 새로운 도전이자 실험이었지만, 현지 주민들은 노지 농사에 만족하지 않고 근처의 폐자재를 모아 간이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비닐하우스에서는 오이와 토마토 등을 키웠고 노지에서도 감자와 무, 배추, 당근 등을 재배했다. 수확물의 일부는 자체적으로 소비했고, 나머지는 시장에 내다 팔아 소득에 보탰다.
현장을 함께 가꾸고 있는 한국인 조력자들은 황무지를 바꿔가는 입체적인 변화의 경험과 나뭇잎이 틔워내는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돈드고비 ‘고양의 숲’ 조림지에서 ‘푸른아시아’ 현지 파견 단원으로 활동 중인 이일우(26)씨는 “몽골에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함께 걸어가며 만든 환경과 인식의 긍정적 변화는 나무심기가 가져온 친환경 나비효과”라고 설명했다.
국제개발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찬미(22)씨도 “이곳에서 외연의 확장을 경험하며 현장을 배운다는 보람을 느낀다”면서 “내가 하는 일이 결국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처음엔 도우러 왔다는 생각을 갖고 현지에 왔지만, 지금은 도리어 도움을 받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말처럼 황무지를 녹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의 공간은 시혜적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의 미래를 지켜주는 ‘녹색 상부상조’의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 메마른 땅위에 대견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녹지대는 모래먼지를 걷어내며 양국을 이어주고 있었다. 셍차강(몽골)=글·사진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취재협조=‘푸른아시아’]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ECOSOC) 특별협의단체 겸 지구환경기금(GEF)·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녹색기후기금(GCF)·기후기술센터네트워크(CTCN) 공인 NGO.
구성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