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영화관이 34년간 꾸준히 상영해온 할리우드 대표 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스크린에서 퇴출시키기로 했다. 이유는 ‘인종차별’이다.
1928년에 개관해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의 명소로 자리 잡은 오피엄 영화관은 매년 여름 특선영화제에서 선보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더 이상 상영하지 않고 했다고 CBS방송 등이 28일(현지시간) 전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퇴출된 데에는 이 영화를 향한 인종차별 비판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마거릿 미첼이 1936년에 쓴 소설을 원작으로 촬영됐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조지아 주 애틀랜다 목화농장을 배경으로 농장주의 딸 스칼렛 오하라가 겪는 삶을 그렸다. 미첼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줬고 1939년 영화로 개봉됐다. 영화도 호평을 받으며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등 8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특히 백인우월주의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을 미화한다는 문제제기가 거셌다. 스칼렛과 같은 남부의 여성들이 흑인 노예나 북부의 사기꾼에게 모욕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남부 신사들이 불가피하게 KKK를 만든 것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던 무렵까지도 인종차별은 극심해, 흑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해티 맥대니얼은 정작 자신의 영화 첫 시사회엔 참석하지도 못했다.
극장주 브렛 배터슨은 “인종차별에 무감각한 작품을 더 이상 상영할 수 없다”며 퇴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영화제의 목적은 지역사회 주민들을 즐겁게 하고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며 “내년부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여름 특선작 목록에서 제외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1984년부터 오피엄 극장 여름 특선 상영작 목록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 올해는 지난 11일에도 상영됐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버지니아 주 샬럿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폭력사태가 발생한 날이다. 극장 측은 “소셜미디어에서 영화에 대한 비난이 폭주했다”며 시민들의 반응이 이번 방침의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극장이 있는 멤피스의 흑인인구 비율은 63%에 달한다.
하지만 일부 영화팬들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또 다른 예술 검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당대 사회와 변화하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