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봄 가뭄에 이은 기록적 폭우와 폭염이 들쑥날쑥 이어지며 각종 병해충이 기승을 부려 농민의 시름이 깊어졌다. 27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수확을 앞둔 채소와 과일 생산량이 급감해 농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가격이 급등하면서 밥상 물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과 주산지인 충북 충주시의 경우 전체 재배 면적의 30%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 올 여름 자주 내린 비 때문에 탄저병이 급속히 확산된 탓이다. 경상북도도 최근 ‘병해충 경보'를 발령했다. 영주·문경·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 사과 주산지를 중심으로 홍로 등 조생종 사과에서 탄저병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 지역은 7~8월에 비가 내린 날이 32일이나 됐다. 이런 날씨는 농작물에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 증식에 유리한 환경이 된다.
미국선녀벌레 같은 돌발해충도 지난달부터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들깨와 콩 등 밭작물의 수액을 빨아먹어 피해를 주고 있다. 비가 잦아져 수분을 너무 많이 흡수한 포도는 알이 터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고랭지 채소 생산지인 강원도 평창 대관령과 강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다 자란 배추가 속이 곪아 썩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땅이 물을 가득 머금어 배추 잎이 누렇게 녹아내리고 속이 제대로 차지 않는 배추 무름병 등 병해가 확산된 탓이다. 대관령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박세훈(39)씨는 “올해 잦은 비 때문에 예년 생산량의 절반도 못 건질 것 같다”며 “11만㎡ 밭 가운데 절반가량이 무름병이나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고 주변 농가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농협에 따르면 지난 25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공급된 배추는 320t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 하루 배추 공급량이 700t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과일과 채소의 작황 부진으로 소비자 가격이 상승하면서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행이 지난 21일 발표한 7월 생산자물가 잠정치는 101.84로 6월보다 0.1% 상승했다. 생산자 물가는 국내 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 변동을 말한다.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준다. 상추(257.3%)와 시금치(188.0%), 오이(167.6%), 배추(97.3%) 등 채소가 이상기후로 작황이 좋지 않은 탓에 전달보다 가격이 2~3배 치솟았다.
홍성헌 기자,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