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당대표, 롤러코스터 정치… ‘안철수의 시간’ 올까

입력 2017-08-27 15:45 수정 2017-08-27 15:56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7일 당대표로 선출됐다. 1차 투표에서 득표율 51%로 과반 확보에 성공했다. 지난 5월 9일 19대 대선 패배 후 110일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의 취업 특혜의혹 제보 조작과 관련한 대선후보 책임론 등 당 안팎의 반발이 거셌지만 그는 다시 ‘정면돌파’를 선언했고, ‘국민의당 호’의 선장으로 복귀했다.

안 대표의 정치인생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의 연속이었다. ‘새 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 속에서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현실 정치의 벽 앞에 번번이 무너졌다. 그럴 때마다 ‘광야’에 선 끝에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가 애초에 내세웠던 새 정치의 가치는 빛이 바랬다.


◇화려한 정치입문…대선후보 단일화에서 ‘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으로 알려진 안 대표가 국민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9년 MBC 예능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인생은 효율성이 전부가 아니다’ ‘실패한 사람이라도 기회를 주는 쪽이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을 만든다’ 등 어록을 쏟아내며 청년들의 멘토로 떠올랐다.

2011년 그는 ‘시골의사’ 박경철씨, 법륜스님 등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열면서 청년들의 고민을 듣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안철수 신드롬’이 회자됐다. 50%가 넘는 지지율로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안 대표는 당시 지지율 5%에 불과했던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고, 박 시장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2년 9월 안 대표는 정치개혁을 앞세워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에 실패했고, 결국 중도 낙마했다. 이 때부터 그에겐 ‘양보’ ‘철수 정치’ 등 달갑지 않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탈당과 창당…당 대표직 사퇴 후 재기 반복

이후에도 순탄치 않은 여정이 계속됐다. 2013년 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자리까지 올랐지만, 당 혁신 노선을 놓고 친문(친문재인) 세력과의 갈등 끝에 대표직을 사퇴했다. 2015년 말에는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탈당을 결행한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들과 함께 2016년 2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해 4·13총선을 앞두고 ‘야권통합’의 거센 압박을 받으며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안 대표는 “광야에서 죽어도 좋다”며 모든 연대론을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걸었다. 그 결과 총선 전 10%대 초반 지지율에 그쳤던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26.74%로 를 얻으며 ‘3당 체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때의 경험은 이후 안 대표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선언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축배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달여 뒤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이 당을 뒤흔들었다. ‘박근혜정부의 안철수 죽이기’라고 호소해봐야 소용없었다.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국민의당 지지율은 추락했고, 차기 대선을 준비해야 했던 안 대표에게도 빨간불이 켜졌다. 결국 그는 국민의당 공동대표 직을 사퇴함으로써 또다시 막다른 길에 몰린다.


◇‘문재인 대항마’ 급부상…어정쩡한 스탠스로 대선 3위 추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안 대표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유력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올초 지지율이 7%대에 그쳤지만 안 대표는 19대 대선이 자신과 문재인 후보와의 ‘1대 1 대결'이 될 것이라 자신했다. 당시만 해도 지지율이 3~4배 차이로 문 후보가 앞섰지만 4월초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서 안 대표의 예언은 거짓말처럼 맞아떨어졌다. 국민의당 경선에서 ‘안풍(安風)'을 일으킨 안 대표는 문재인 대세론을 무너뜨릴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가파른 상승만큼이나 추락도 빨랐다. ‘대형 단설유치원 설립 자제’ 발언으로 주부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고, TV토론에서 약점이 노출되면서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졌다. 안 대표 부인 김미경 교수의 취업특혜 의혹 관련 민주당의 공세도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다. 호남 지지세력과 영남·보수층을 동시 공략하려다 햇볕정책에 대해 ‘공도 있고, 잘못도 있다’는 식으로 갈팡질팡한 것도 유권자의 실망을 부추겼다. 결국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도 뒤진 3위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당 안팎 반발에도 당대표 선출…‘안철수의 시간’ 올까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을 거치며 당내에선 정계은퇴 주장까지 나왔지만 안 대표는 당대표 출마로 승부수를 걸었다. 그는 지난 3일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이라며 “제가 살고자 함이 아니라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출마를 결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국을 구하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 안중근 의사의 심정”이라고도 했다. 

사흘 뒤 혁신비전 간담회에서는  “제 미래보다 당의 생존을 위해 제가 나서야 한다”며 “독배라도 마셔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치입문 이후 굴곡진 정치인생을 걸어온 안 대표는 27일 당대표로 선출됨으로써 내년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할 자리에 섰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