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하면서 삼성그룹은 80년 그룹 역사에서 첫 총수 실형이라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추진해온 ‘뉴삼성’ 구상 등 글로벌 경영의 장기간 표류도 불가능해졌다.
이 부회장은 2014년부터 와병 중인 부친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경영 일선에 나섰고, 이 회장이 병석에 누운 이후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해 왔다. 판결 직후 삼성 측은 곧바로 항소심 준비에 들어갔지만 특검법상 피고인 구속 기간을 고려하면 최소한 오는 연말, 적어도 내년 2월까지는 총수 없이 버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로 속도를 높이던 인수·합병(M&A) 등 그룹 재편 작업이 올스톱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금액인 8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자동차 전장 오디오 전문기업 ‘하만’을 인수했다. 2015년 삼성페이의 바탕이 된 ‘루프페이’와 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업체 ‘예스코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했고,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업체 ‘데이코’도 지난해 사들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대규모 M&A가 1건도 없다. 한화에 방위산업 및 화학 계열사를 매각한 것과 같은 사업구조 개편 작업도 중단된 상태다.
그룹 경영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중심으로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중심의 비상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 삼성 특검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가동됐던 ‘사장단 협의체’를 재가동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일시적으로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번 선고로 삼성의 대외 이미지 타격 역시 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ACP)’에 따른 피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FACP는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뇌물 제공 시 벌금 및 사업기회 박탈 등의 제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이 미국 상장사는 아니지만 2008년 법 개정에 따른 적용 대상 확대로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 부회장이 지난 7일 결심공판에서 “오해와 불신이 풀리지 않으면 저는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고 밝힌 만큼 향후 리더십 회복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당분간 항소 절차에 집중하면서 그룹 경영과 관련해 모종의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논란을 불식시키면서 자신은 ‘본업’인 삼성전자 등기이사 겸 부회장 역할에만 전념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등 나머지 직위를 모두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그룹은 집단경영 체제로,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이원화될 수 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