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영웅'이 내린 발포명령? 판도라 상자 보안사 기밀문서 공개될까.

입력 2017-08-25 15:11 수정 2017-08-25 16:32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5·18 관련 집회에서 빼놓지 않고 불렸던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의 첫 대목이다. 프로야구 기아타이거즈의 전신 해태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연거푸 차지하던 1980년대 후반에는 야구장에서도 이 노래가 응원가로 자주 불렸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어쩌면 섬찟한 가사의 이 노래에는 1980년 그날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광주시민들의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바로 발포명령자와 암매장 여부 등을 밝혀달라는 염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지시 이후 국방부가 5·18 당시 발포명령자 찾기에 나섰다. 공대지 폭탄을 장착한 공군 F-5 전투기가 광주 도심을 폭격할 준비를 했는지 여부도 조사대상이다.

광주지역 5월 단체들은 “1980년 이후 37년간 베일에 휩싸여온 발포명령자를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뚜껑을 열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가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보안사령부에 제출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5·18 관련 기밀문서가 그것이다. 과거사위는 당시 보안사가 은밀히 보관 중인 48권 분량의 기밀문서를 확인하고 문서공개를 요청했다가 10권부터 48권까지만 넘겨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안사가 공개를 거부한 1권부터 9권까지의 기밀문서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5·18기념재단 등 5월 단체들은 “공개된 39권의 기밀문서는 1권당 대략 700쪽 분량으로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각 부대별 상황일지 등 핵심적 군사작전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춰 보안사가 지금까지 공개를 꺼려온 기밀문서 9권에는 1980년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보안사를 지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체적 행적 등 5·18 진상규명의 열쇠가 될 다량의 문서가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실권자로서 군부대를 완벽하게 장악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돼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현재 기무사령부로 명칭이 변경된 보안사는 당시 모든 군부대를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지난 24일 ‘발포 명령 하달’이라는 문구가 명기된 채 처음 세상에 공개된 군 내부문건도 광주지역 505보안부대가 작성한 것이었다. 보안사의 절대 권력은 1980년대 이후에도 유지됐다. 구국의 영웅으로 한껏 미화된 전두환 체제가 7년간 굳건했기 때문이다.

5·18 당시 발포명령자 등 진상규명의 결정적 증거가 될 보안사 기밀문서 9권이 온전히 보관됐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보안사는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5·18 진상규명에 어깃장을 놓기 위해 군 관련 서류를 상당수 조작한 전력도 있다.

출판·판매가 법원 판결에 의해 금지된 ‘전두환 회고록’ 출간 역시 자신의 집권기간 7년간 기밀문서 폐기를 통해 5·18의 진실을 영원히 감췄다는 비뚤어진 확신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5월 단체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며 “새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37년간 묻혀 있던 진실이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보안사는 당시 각 군부대를 감찰하고 주요 장교들의 작전명령 수행 여부 등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모든 군 작전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며 “발포명령자 등 전두환 권력 탄생의 비화가 보안사 기밀문서에 그대로 담겨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