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유미에게 500만원, 정유라에게 300억원, 이것이 삼성”

입력 2017-08-25 14:5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내내 이슈의 중심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2개의 큰 고리’로 설명한 바 있다. “하나는 최씨가 대통령을 팔아 국정을 농단한 것, 다른 하나는 정경유착”이라는 것이었다. 국정조사와 수사, 재판을 거치며 드러난 삼성 수뇌부의 민낯은 더러 어록처럼 회자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에게 보상금 500만원을 내민 일을 아느냐”는 질문에 “몰랐다”며 “아이 둘을 가진 아버지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거액의 승마 지원을 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였다. 공익적 사회공헌 활동이었다는 항변에도 여론은 싸늘했다. 질문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고 황유미에게 500만원을 내밀고, 정유라에게 300억원 내미는 게 삼성”이라고 말했다.

청문회에서 “뭐라고 꾸짖으셔도 드릴 말씀이 없다”며 거듭 사과했던 이 부회장은 피의자 신분이 된 이후엔 “아무 것도 몰랐다”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정씨에 대한 지원이나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아랫사람들이 모두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는 투였다. 정치권에서는 ‘바보 이재용 전략’이라는 말이 나왔다. “‘삼성그룹을 이끌 지적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비난마저 있었다. 그가 특검의 2차 구속영장 청구 끝에 구속되자 방송사 라디오에는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신청곡이 쇄도했다.

이 부회장은 피고인이 되어서는 여러 이야기를 쏟아냈다. 뇌물 혐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요 때문이었다고 호소하는 과정에서는 “여자분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것은 (박 전 대통령에게 들은 게) 처음이라 당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저희 회장님(이건희 회장)께는 자주 야단을 맞고 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고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독대에서 삼성의 승마 지원을 촉구하는 대목을 회고할 때에는 “자존심이 상했다”며 “한화보다 못할 것 같지도 않고…”라고 말해 법정 방청석에서 웃음이 일었다.

이 부회장은 특검이 징역 12년을 구형한 지난 7일 최후진술에서는 이병철 전 회장을 향해 “창업자이신 저희 선대 회장님, 죄송합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이번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많은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났다. 이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 사익을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 대통령에게 뭘 부탁한다든지 그런 기대를 한 적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으로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할 때에는 “제가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서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그런 욕심을 부렸겠습니까”라고 재판장을 바라보며 억울해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