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발포 명령 문건 공개 직후 ‘최세창’이 실검 장악한 이유

입력 2017-08-25 07:14

5‧18 당시 군 당국이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쏘도록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는 군 내부 기록이 처음 공개되면서 최세창 여단장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최세창’이 실시간 검색어에 랭크되며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최 여단장이 공개된 문건에 실탄을 지급한 부대의 책임자이자 전두환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최세창이 최초 발포 명령자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24일 5·18기념재단이 공개한 5·18 발표명령 하달 문건에는 ‘광주 소요사태’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또 “80년 5월20일 ‘23시15분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 및 전남대 부근에 병력에게 실탄 장전 및 유사시 발포 명령 하다(1인당 20발)’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는 505보안부대가 당시 입수한 정보들을 종합해 작성한 일지로 전해졌다.

당시 전남대 부근에 주둔했던 병력은 제3공수여단으로 최세창 여단장이 부대 책임자다. 최 여단장(육사 13기)은 신군부 실세 전두환 보안사령관(육사 11기)이 제1공수여단장이었을 때 부단장을 지낸 측근으로 유명하다.

1980년 8월20일 밤 11시 전남대 인근 광주역 앞에선 최 여단장이 이끈 부대의 소속 군인이 발포해 시민 4명이 숨졌다. 다음날인 21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선 공수부대원들의 집단발포로 시민 34명이 사망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기록 보고서에는 최세창 3공수여단장이 5월20일 밤 10시30분 ‘경계용 실탄’을 위협 사격용으로 공수부대 각 대대에 지급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88년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이 펴낸 ‘광주사태체험수기’에도 이상휴 중령(당시 3공수여단 13대대 9지역대장)이 “전남대학교에서 급식 후 중대장 지역대장에게 M16 실탄 30발씩 주고, 사용은 여단장 통제”라고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엔 ‘최세창’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최세창 여단장에 대한 과거가 재조명 되고 있다. 많은 네티즌은 최 여단장을 추궁하면 최초 발포 명령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84세인 최 여단장은 1977년 육군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장에 임명됐으며 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도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투입된 인물이다. 육군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육군 제3야전군사령과, 합동참모의장,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등을 역임했다.

1997년 4월17일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1998년 8월15일 사면됐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