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30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이 결정된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실질적 총수인 그를 피고인석에 앉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뇌물 혐의 선고공판을 시작한다. 지난 2월 구속 기소 이후 178일 만에 법원의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9년 1개월이 지나 아들이 같은 자리에 서게 됐다.
이 부회장 판결은 10월쯤 선고될 것으로 예상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판결을 가늠해보는 기회가 된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은 뇌물 공여자와 수수자의 관계자에 있다. 뇌물죄 법리는 뇌물을 건넨 사람과 받은 사람 간에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이 이뤄져야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없으면 무죄로 판단한다. 뇌물 공여자인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될 경우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도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 부회장 선고공판은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된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9년 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등의 혐의(특경 배임 등)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그 법정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같은 피고인석에 앉게 될 이 부회장은 불구속 상태였던 아버지와 달리 구속 수감 피의자로 법정에 출두한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 중 구치소에 수감된 건 그가 유일하다.
선고는 재판장인 김진동 부장판사가 공소사실 별로 유·무죄 판단을 밝히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 은닉, 국회 위증 등 모두 5가지다. 핵심은 역시 뇌물공여 혐의에 있다. 이것이 유죄로 인정될 경우 중형이 불가피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을 박근혜정부 임기 안에 완료하기 위해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승마 지원 등을 명목으로 뇌물을 건넸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맞서 이 부회장 측은 뇌물죄 구성요소인 ‘대가성’과 ‘부정 청탁’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를 했고 지원 요청을 받았지만 그 대가로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뇌물수수죄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소 징역 5년이 선고된다. 많게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뇌물공여죄는 형량이 이보다 낮지만 유·무죄 판단 기준을 수수죄와 같다. '대가'와 '부정 청탁'이 좌우한다. 뇌물죄는 형량이 무거운 만큼 법원의 판단 기준도 까다롭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다른 관련 피고인들은 각 징역 7∼10년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구속기간 만료(28일)를 앞두고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돼 항소심 재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